내가 사는 이야기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智美 아줌마 2008. 5. 7. 23:48



엄마 ~
마음 속으로 불러봐도 콧끝이 아려 눈물이 핑 돈다.
작년 이맘 때에는 울 엄니가 살아 계셨는데 지금은 안계신다.

내일이 어버이 날이여서인지 오늘 엄니 꿈을 꾸었다.
엄니 가시고 행여 시간이 지나면 엄니를 잊을까
핸드폰 창에 엄니 사진 올려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엄니를 봐도
그동안 꿈에서도 볼 수가 없었는데 오늘 잠시 모습을 보여 주고 가셨다.

내일이 어버이 날이라 다녀 가셨나?
아니면 작년 이맘 때 딸이 엄니 손을 잡고 울던 모습이 생각나 다녀 가셨나?
작년 어버이 날, 엄니 목욕 시켜 드리고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는
복 받쳐오는 울음을 꾹꾹 누르면서 삐져나오는 울음에도 얼마나 목놓아 울었던가.

그렇게 마지막 어버이 날을 보내고 채 두 달도 못 사시고 엄니는 가셨다.
그것도 당신이 당신 명을 끊어 가시고 말았던 것이다.
자식들을 기가 막히고 놀라 말문이 막히게 하고 가셨지만
그것이 엄니가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 아니였을까 하고 생각한다.

작년 6월 26일 마지막으로 엄니 목욕 시키고 돌아올 때
다른 날과 달리 엄니는 내 손을 잡고 차마 놓지를 못하시면서
"오늘이 마지막 보게 될 것 같다" 하시며 눈시울을 적시시고는
그 다음 날 새벽에 엄니는 당신의 가야할 길을 앞 당기고 말으셨다.

6월 28일 아침에 오라버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핸드폰으로 전해졌다.
"엄니가 이상하시다. 돌아가실 것 같다." 라는 말을 하는 오라버니께
"안돼, 엄니 못가시게 붙잡아, 의사 선생님께 빨리 살려 달라고 해 오라버니"
나는 울면서 오라버니에게 소리 쳤다.

그리고 항급히 준비하고 안산으로 내달렸다.
출근 길 전철 안,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흐르는 눈물은 그칠줄을 모르고
볼을 타고 자꾸 흘렀다.
"제발 , 엄니 , 제발 기다려줘, 엄니 제발 . . ."
가는 중에 오라버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쯤이냐고 . . .

"오라버니, 엄니 못가시게 붙잡아, 제발 엄니 못가시게 해.
"안돼, 어떻게 보내. 힘들어도 조금만 더 같이 있어 달라고 했는데 . . ."
"어떻게 보내. 오라버니, 제발 엄니 붙잡아 줘 오라버니 제발 제발 ;. . .."
나는 많은 사람이 있는 전철 안이였지만 엉엉 소리쳐 울었다.

오라버니도 동생의 절규하는 말에
"그래 못가시게 할게. 알았다. 알았다." 하시었다.
그렇게 안산 백병원에 도착하니 응급실에 누워 있는 엄니는
그제 곱게 목욕 시켜 드렸던 엄니의 모습이 아니였다.

나는 바닥에 주저 앉아 엉엉 소리쳐 울었다.
의사선생님 붙잡고 매달렸다. 우리 엄니 살려 달라고 . . .
그런데 의사선생님는 임종 맞을 준비를 하라는 듣고 싶지도 않은 말을 하였다.

"왜 갑짜기 이렇게 나빠지셨어? 왜?"
"그제 봤을 때도 괜찮았는데 왜? 왜?" 오라버니와 올케 언니에게 따지 듯이 소리쳐 물었다.
오라버니도 전 날 밤에 뵈었을 때도 괜찮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갑짜기 나빠지셨을까? 왜?

백병원에서는 달리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하여 동생 교회 장로님이 병원장으로 계신
안양 샘병원으로 모셨다.
암진단을 받은 후 지난 10월에 샘병원에서 보름 정도 계셨고 호스피스 병동이
따로 있어 그리로 옮겼다.
샘병원에 도착하니 수간호사님도 전도사님도 엄니를 알아보고는 놀라하셨다.

사람 목숨이 질기다 하더니 힘들게 힘들게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힘겨웁게 가는 숨을 쉬시며 의식은 없었지만 내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그렇게 자식들 두고 가시기를 마음 아파 하시면서 . . .

마지막 목욕을 시켜 드리던 날 엄니는 말씀하셨다.
"절대 날 살리려고 산소 호흡기는 꽂지마라, 그냥 가게 아무 것도 하지마라.
오빠한테도 전해주고 마음 아파 하지말아라.
우리들이 이젠 어려운 고비 다 넘기고 잘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때 난 말했다.
"엄니 이게 마지막 같나? 힘들어서 그러나? 그래도 조금만 더 같이 있어도."
이 딸의 말에 그러마하셨는데 이틀도 못 지나 가시려고 하시는 것이였다.

샘병원에서 둘째 날을 보내고 있는 밤에 잠시 의식이 돌아오셨다.
무언가를 말을 하고 싶어 하시는데 산소 호흡기 때문에 말을 못하셨다.
형제들은 엄니 불편해서 그러냐, 아프셔서 그러냐 . . . 말을 하였지만
머리를 저으시기만 하셨다.

난 엄니가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알았다.
엄니가 산소호흡기를 꽂지마라 하셨는데 난 오라버니에게 말을 전하지 않았다.
"엄니, 산소호흡기 빼달라고?' 하니 머리를 끄덕이셨다.
그때 오라버니에게 엄니 말을 전했다.

동생이 의사선생님을 불러와 산소호흡기를 빼달라하신다고 했더니
잘 생각해 결정하라고 빼고나면 다시 낄 수가 없다고 . . .
그 말을 듣으시고는 몸부림을 치시면 빼달라고 하셨다.

하는 수 없이 엄니 원하시는대로 산소호흡기를 빼드렸는데
빼자마자 엄니가 가뿐 숨을 몰아 쉬시며 하시는말

"내 약 먹었다. 너희들 힘들게 하고 나도 너무 아파서 . . ."
"날마다 내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 봐야하는 니들 오빠 너무 마음 아프게 하고 . . ."
"나 목욕 시켜주러 오는 정애도 힘들게 하고 너희들 모두 힘들게 해서. . ."

우리들은 기가 막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떠듬떠듬 우리는 " 무슨 약을 드셨는데요?" 하고 여쭈어 보았다.
"내 먹는 고혈압 약 한웅큼 많이 먹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었다.

그날 아침 오라버니가 일어나니까 늘 방문을 닫고 주무시는데 방문이 열려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식구들 인기척이 나면 일어나셨는데 정말 곤히 주무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출근을 하면서 엄니 방을 들여다 보았을 때도 기척이 없으셔서
오늘은 이상하게 깊이 주무시네하고는 그냥 출근을 하려다가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였는데도 깨시지를 않았다고 하셨다.

순간 놀라 엄니를 흔들어보니 의식이 없으시고 그 초롱하시던 눈이 촛점을 잃고
힘없이 감으시더란다.
머리 맡엔 그동안 당신이 지니고 계셨던 돈과 반지, 통장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고 한다.

나는 "엄니 그렇게 참기 힘들었나? " 하니 머리를 끄덕이셨다.
오라버니가 엄니 보라고 방문 열어 놓고 주무셨나? 하니 머리를 끄덕이셨다.
당신이 죽음을 선택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다 하시고
당신의 죽음을 자식들이 알게 하기 위해 방문을 열어 놓으셨던 것이였다.

" 엄니 우리가 엄니 많이 사랑하는 거 알제? 하니 머리를 또 끄덕이셨다.
"엄니 보내 드릴게, 편하게 가시게 안잡을게, 엄니 보내 드릴게." 하며 우는 날 보시며 
다시 머리를 끄덕이시면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다시 의식을 잃으셨다.

그랬었다.
당신 때문에 자식들 더 힘들게 하지 않으시려고 당신 스스로
저승 길을 재촉해 가신 것이였다.
그리고 왜 당신이 이렇게 급히 서둘러 가시게 되었는지도 말씀해 주시고 가셨다.

이 어찌 말로 다하랴.
엄니의 자식 사랑이 이렇게 크고 큰 것을 . . .
그것이 엄니가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였으리라.

엄니는 아베가 일찍 사고로 돌아가신 충격으로 서서히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셨다.
그래서 나이드시면서 좋은 곳 구경도 많이 못 다니시고 살으셨다.
그런 엄니와 답답하게 무덤 속에 계셨던 아베를 동해 바다에 뿌려 드렸다.
자식들 살기 바쁜데 산소 찾아다니는 것 원치 않으신다고
엄니가 그리 해줄 것을 원하셨다.

이 또한 돌아 가셔서도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끝없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런지.
그래서 넓은 세상에서 훨훨 날아 숨 트이게 자유롭게 편히 계시라고 그리 해 드렸다.
엄니 . . .
엄니, 아베 잘 계시지요?

2008년 5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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