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리 신재효 선생 고택을 둘러보고 바로 앞에 있는 고창읍성으로 간다.
고창읍성 앞에 동리 기념관(?)
동리 신재효 기념비
고창읍성 축성 고을 표석은 고창읍성을 19개 군·현에서 참여하여 완공하였는데 각 고을에서 참여한 구간을 표석으로 만들어 성 외곽에 세워 놓았다
원래 이 비석들은 옛 고창현 내에 산재하던 것을 보존을 위해 근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성밟기 놀이는 여인들이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돈 다음 성 입구에 그 돌을 쌓아둔다. 이렇게 쌓인 돌은 유사시에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성을 한바퀴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바퀴돌면 무병장수하며 세바퀴돌면 극락승천한다고 한다.
다박솔, 한 뿌리에서 여러 가지가 뻗어 난 소나무
성곽 위에 보이는 나무들이 벚나무인데 봄에 오면 철쭉이랑 피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이제 성 안으로 들어가보자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고창의 방장산(743m)을 둘러싸고 있다. 모양성이라고도 하는데, 백제시대 때 고창 지역이 '모량부리'라 불렸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1453년(조선 단종 원년)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계유년 축성 당시 오랜세월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각 고을에서 성 쌓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성벽에 자신들이 쌓은 구간과 고을 이름을 새겨놓았다.
북문이자 정문인 공북루는 동문, 서문과 같이 적으로 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옹성을 둘러쌓고 그 위에 여담을 쌓아 성안에서 밖을 살필 수 있는 현안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을 만들어 놓았다.
복원 공사 전에는 고창 읍성 안에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공북루 북문을 학교 교문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웃지 못할 일이지만 당시 그 학교 졸업생들에게 길이길이 남을 추억이 될 것 같다.
공북루 2층에 올라가보려니까 올라가지말라는 안내판이 있어 계단에서 한 컷 찍었는데 관리사무소 직원이 올라가보라고 했지만 내가 올라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다 올라가게될 것 같아 사양했다.
요즘에도 동네 어르신들께서는 올라가 쉬시다가 가시곤 한단다. 오래 전부터 그리 하셨기 때문에 말씀 드려도 늘 올라가던데는 왜 못올라가게 하느냐고 하신다고 . . .
관리사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서관이 보인다.
벚나무와 성벽, 떨어진 낙엽들이 성큼 다가온 가을을 느끼게 해준다.
공북루에서 내려다 본 읍성 안의 전경
1871년에 세운 대원군 척화비
옥 : 조선시대 옥은 대개 관아 입구에 짓고 동쪽 칸과 서쪽 칸에 남, 여 옥을 만들어 높은 담을 둥글게 쳤는데 그래서 원옥이라고 하였단다.
관청은 관주라고도 하였는데 지방 관아의 주방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곳으로 이곳에서 수령과 그 가족들의 식생활을 비롯 빈객의 접대와 각종 잔치에 핑요한 물품의 조달 및 회계사무를 관장하였다.
관창에서 내려다 본 풍경
연못에 아낙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밟기를 하는 모습과 용과 호랑이?
풍화루 쪽에서 바라 본 관청
고창읍성내 고인돌
풍화루는 고창읍성 연못 옆에 세운 2층 누각이로 문헌에는 빈풍루와 풍화루가 있었다고 전해오나 모두 소실되어 1988년 발굴조사하여 복원하였다.
풍화루 옆으로 올라가면 동헌과 내야, 장청이 있다.
장청은 왕궁과 병영 및 진을 지키는 중앙군인과 지방의 군, 현을 지키는 속오군의 우두머리인 현감과 병방.군교들이 군무를 보살피는 청사이다.
이제 동헌과 내야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보자.
고창 내야는 내동헌으로 수령이 기거하던 살림집이다
고창 동헌은 조선시대 목과 도호부, 군, 현 등 각 행정단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정무를 보던 외동헌 청사로 일반적으로 동헌이라고 하며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의 평근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동헌 뒤의 굴뚝
고창 객사,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에 객사라고하는 관아가 있었는데 몸체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나라에 경사와 궂은 일이 있을 때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렸으며 왼쪽과 오른쪽 방은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하였다.
본관 현판에 모양지관의 모양은 예로부터 이 고장을 모양고을이라 하였고 이 성을 몽양성으로 불러온데서 비롯된 당호이다
고창객사 아래 흰배롱나무꽃
이곳에서 활짝 핀 고마리를 볼 수 있었다. 실제 꽃 크기가 사진에 보이는 봉우리만하다.
작청은 질청이라고도 하는데 이방과 아전들이 소관업무를 처리하던 청사이다. 고창읍성이 문화재로 등록되기 전에 고창 여자 중학교를 건립하면서 작청을 다른 곳으로 이건하여 관리소로 사용하여 오다가 1986년 학교를 성밖으로 이전하고 복원하였다.
고창 읍성 안쪽을 다 둘러보고 성곽으로 올라간다.
왼쪽 길은 성벽 아래에 있는 길이고 오른쪽은 성곽 윗길인데 난간이 없어 이 부분 올라가는데 조금 아찔하다
초승달모양이 뚜렷하게 보인다
고창읍성의 치 부분이다
위 사진 치 부분에서 내려다 본 고창 마을들
성곽을 따라 걸으니까 시야가 탁트여 시원하고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 있다
동문인 등양루가 보인다
동문은 북문에 비해 규모가 작고 문이 닫혀있다
등양루 2층 창문
동문인 등양루 문이 굳게 닫혀있으니 동문 안쪽으로 내려가면 작청과 관청이 있다
동문을 나와 다시 성곽 위를 걸으며 돌아본 등양루
지형 그대로 성벽을 쌓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읍성을 돌아야한다
고을마다 성쌓은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걸으니까 쉽게 구분이 안간다
성황사에는 성황신을 모셔 고을의 평화와 풍년을 지켜준다고 믿고 매년 중양절 음력 9월9일에 모양성제날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맹종죽은 죽수대라고도 부른다. 중국이 원산이며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재배하는데 대가 비교적 크나 무르기 때문에 공예용으로 쓰지 못하고 죽순을 먹기 위해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죽순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고창읍성의 대밭은 1930년대 주변 사찰의 조경용으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서문 진서루가 보인다.
서문인 진서루 문도 굳게 닫혀있다.
언덕을 넘으면 공불루가 보인다.
이곳에 꽃무릇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 드디어 이 계단을 내려가면 고창읍성 한바퀴는 돌은 것이다. 한 바퀴를 돌면 다릿병이 낫는다고 했는데 도리어 다리가 아프게 생겼다. ㅎㅎㅎ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서문쪽에서 내려온 계단길
자전거 하이킹을 온 사람이 찍어 준 사진인데 그 양반들 뭐가 궁금한게 많은지 사진 두어장 찍어 주고 어디서 왔느냐? 왜 혼자 여행을 다니냐? 이것 묻고 저것 묻고 오나가나 이 넘의 인기는 식을줄을 모른다. 켁!! 돌 맞은 소리 . . .ㅎㅎㅎ
아침 일찍 서둘러 둘러 본 고창 읍성, 참 아름다운 곳이다.
봄에 오면 더 예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니까 성곽 둘레에 철쭉이 빨갛게 피고 안으로는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환상적이다.
기회가 되면 봄에 다시 한번 더 가보고싶은 곳이고 여러분들도 함 가보시라고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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