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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여 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박물관, 봉화 만산고택

智美 아줌마 2017. 1. 29. 23:43

고택의 매력은 겨울에도 진가를 발휘한다. 방안에 앉아서도, 마루에 앉아서도 겨울이 피부로 와 닿는다. 뜨끈한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는 겨울의 찬 공기로부터 보호해 준다. 군불로 데워진 아랫목에 몸을 지지면 묵은 스트레스도, 몸에 쌓인 피로도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한겨울에 노천온천에 들어앉은 기분이 든다. 눈에 보이는 풍경도 서정적이다. 아침, 저녁 식사준비를 위해 아궁이에 불을 땔 때면 하연 연기가 굴뚝을 타고 오른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한없이 따뜻하고 여유로운 풍경이다. 한옥이 지닌 매력을 느껴보기 위해 봉화 만산고택을 찾았다.

 

4~5시간을 데우면 24시간 따뜻한 구들방

 4~5시간을 데우면 24시간 따뜻한 구들방

만산고택은 조선 말기 문인 강용이 1878년(고종 15)에 지은 집이다. 2013년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79호로 지정됐다.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사방으로 한옥에 감싸 안겨 안락한 느낌이 든다. 넓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정면에는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돼 있고 좌측에는 서실, 우측에는 돌담을 두르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별당인 칠류헌(七柳軒)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는 사랑방과 대청마루, 조상의 신위를 모시는 감실로 이루어져 있고 사랑채 뒤쪽으로 'ㅁ'자 형태의 안채가 있다. 'ㅁ'자 형태의 집은 추위를 막을 수 있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동남향으로 자리 잡은 긴 행랑채 가운데 솟을대문이 우뚝 솟아 있다.

 동남향으로 자리 잡은 긴 행랑채 가운데 솟을대문이 우뚝 솟아 있다. 11칸의 행랑채는 부를 상징하고, 솟을대문은 가마나 말을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행랑보다 높게 지붕을 만든 위세의 상징이다.

11칸의 행랑채는 부를 상징하고, 솟을대문은 가마나 말을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행랑보다 높게 지붕을 만든 위세의 상징이다.만산은 '대기만성의 큰 인물'이라는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지어주고 써준 글이다. 집 안에 있는 현판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만산의 4대손 강백기 어르신

[왼쪽/오른쪽]만산은 '대기만성의 큰 인물'이라는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지어주고 써준 글이다. / 집 안에 있는 현판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만산의 4대손 강백기 어르신

사랑채 전면에는 이 집의 이름이기도 한 만산(晩山)이라 쓴 대원군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다. 만산고택에는 유서 깊은 현판이 가득하다. 문필로 맺은 맑고 깨끗한 인연이라는 뜻의 '한묵청연(翰墨淸緣)'은 영친왕이 8세에 쓴 글씨다. 이 외에도 고요하고 편안한 집이라는 뜻의 '정와(靜窩)', 일곱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뜻의 '칠류헌(七柳軒)'을 비롯해 18개의 편액이 있다. 현재는 칠류헌 상단 현판을 제외한 나머지는 도난 방지와 보전을 위해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원래 현판이 있던 자리엔 탁본이 걸려 있다.

칠류헌의 대들보는 단단하기로 소문난 춘양목이다. 칠류헌 곳곳에 있는 옛 문인들의 글씨

[왼쪽/오른쪽]칠류헌의 대들보는 단단하기로 소문난 춘양목이다. / 칠류헌 곳곳에 있는 옛 문인들의 글씨

만산고택이 자리 잡은 봉화군 춘양면은 예부터 한옥을 짓는 데 으뜸으로 치는 춘양목이 유명한 곳이다. 하늘 높이 곧게 자라고 껍질은 얇고 부드럽지만 재질은 단단해 안동의 세도가나 서울의 양반집, 궁궐을 지을 때 사용됐다. 만산고택 칠류헌의 대들보도 춘양목이 듬직하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숙박객이 직접 장작을 때는 체험도 가능하지만 장작을 너무 많이 넣으면 아랫목이 눌어붙을 수 있어 시간 조절을 잘해야 한다. 은은하게 조명이 새어 나오는 한옥의 창

[왼쪽/오른쪽]숙박객이 직접 장작을 때는 체험도 가능하지만 장작을 너무 많이 넣으면 아랫목이 눌어붙을 수 있어 시간 조절을 잘해야 한다. / 은은하게 조명이 새어 나오는 한옥의 창

사람과 사람, 자연이 만나 이야기가 되는 곳

140년 된 고택에 숨을 불어넣고 있는 만산의 4대손 강백기 어르신과 안주인이 반갑게 맞아 주시더니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고택과 현판,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아랫목 뜨끈한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찾아왔는데 살아 숨 쉬는 박물관에 온 듯하다.

한옥 전경. 밤하늘에 떠있는 달과 한옥의 조명이 운치가 있다. 한옥과 밤하늘과의 조화가 아름답다 창호지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

한옥의 밤은 은은한 창호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조명과 밤하늘의 조화가 아름답다.

"논어에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말이 있어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는 뜻입니다. 집은 사람이 살아야만 유지가 되고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생동감이 있어 좋습니다. 고택의 매력을 발견하고 무언가를 얻어 가는 듯한 이들을 보면 보람이 느껴집니다." 가장 볼 것 없는 계절에 와서 안타깝다며 봄과 여름엔 집 안 가득 어떤 꽃이 피는지, 한겨울엔 눈 가득 쌓인 마당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들려준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대추가 상상된다. 그럼에도 100년이 넘은 대추나무와 호두나무는 잎이 다 떨어진 계절에도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꽃자수 이불은 홑청을 다 벗겨 세탁하고 다시 입혀야 하는 안주인의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안주인이 직접 만든 도자기 작품들

[왼쪽/오른쪽]꽃자수 이불은 홑청을 다 벗겨 세탁하고 다시 입혀야 하는 안주인의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 안주인이 직접 만든 도자기 작품들

꽃은 없지만 집 안 구석구석 만산고택을 돌보는 어르신과 안주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도자기를 빚는 안주인의 작품이 집 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가만히만 있으면 살아 있는 느낌이 안 든다는 안주인은 숙박객이 뜸한 계절에도 분주하다. 김장하고 남은 배춧잎을 엮어 말리고 가마에 불을 지펴 메주를 담그고 방마다 이불을 정돈하고 추운 날 사진을 찍는 방문객을 위해 따뜻한 커피를 내준다.

만산고택에선 슬리퍼보다는 고무신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방문을 열고 풍경을 감상하는 숙박객

[왼쪽/오른쪽]만산고택에선 슬리퍼보다는 고무신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방문을 열고 풍경을 감상하는 숙박객

한옥에서는 오감이 열린다. 따뜻한 아랫목, 타닥타닥 타는 장작 소리, 조금 무거운 듯한 이불의 무게감, 나무와 종이로 된 방 안에서 나는 한옥의 냄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온몸의 감각을 깨운다. TV나 오락거리가 없이도 하루를 꽉 채워 보낼 수 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발걸음도 조심해야 했던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어른들은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방문을 열어놓고 네모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한다.

창호지 창문 사이로 보이는 바깥 풍경 몇개 남아있지 않은 나뭇잎을 보며 겨울이 왔음을 느낀다. 출입문 틈새로 보는 한옥 내부

한옥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한옥의 창은 단순히 창이 아니라 바람과 볕이 드나드는 통로이자 풍경을 방 안으로 들이는 액자의 역할을 한다. 우리 조상들은 한옥을 지을 때 일부러 큰 창을 두어 집 밖의 풍경을 집 안으로 들이며 자연과 집의 경계를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즐겼다. 경치를 빌린다는 뜻의 '차경'. 이런 한옥의 아름다움은 외국인이 더 잘 알아본다. 한옥의 단아한 선과 미학적인 창과 풍경에 감탄하며 종일 방에 앉아 시간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감상하는 외국인도 있다고 한다.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고택은 조금 불편한 맛이 있어야죠. 바닥은 뜨거운데 웃풍이 너무 안 들면 답답해요. 바람이 조금 통해야 공기가 순환되고 그래야 몸은 뜨끈~하고 공기는 좀 맑아야 좋죠." 안주인이 구들에 장작을 넣으며 이야기한다. 한겨울에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구들에 구운 고구마를 호호 불어 먹으며 눈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상상만 해도 평화롭다.

여행정보

만산고택
  • 주소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길 21-19
  • 문의 : 054-672-3206
주변 음식점
  • 인화원 : 송이돌솥밥 / 봉화군 봉화읍 유록길 20 / 054-673-9881
  • 춘양능이백숙 : 백숙 / 봉화군 춘양면 춘양로 77 / 054-673-8249
  • 봉화한약우본점 식육식당 : 생등심 / 봉화군 봉화읍 봉화로 988 / 054-672-1091
숙소

글, 사진 : 조혜원(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