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재발견 혹은 재소비
군산 원도심은 월명동·신흥동·영화동·장미동 일대를 일컫는다. 1899년 개항 이후 쌀 무역으로 경제 권력을 틀어쥔 일본 부호들이 살았던 동네다. 면적이 0.5㎢도 안 되는 좁은 이곳이 ‘군산 시간 여행’의 주무대다. 월명산(298m)을 제외하면 거의 평지여서 뚜벅뚜벅 걷기에 부담이 없다.
지난해 12월 28일,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근대역사박물관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커다란 현수막이 나부꼈다. 2016년 입장객 100만 명 돌파. 군산이 대도시도 아니고, 내로라하는 작품도 없는 박물관인데 좋은 성과를 올린 게 뿌듯했나보다. 박물관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3층 근대생활관이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근대 의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박물관에서 요즘 유행하는 ‘코스튬 체험’을 운영한다.
내항에서 원도심 방향으로 걸어갔다. 사람이 줄지어 선 이성당 빵집을 지나니 사방에서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골목 곳곳에 카페와 디저트 가게,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보였다. ‘보존과 기억’이 화두인 도시 한편에 변화가 일고 있었다. 지난 3년 구도심 집값이 5배 가까이 뛰었단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세트였던 초원사진관을 지나 히로스 가옥을 찾아갔다.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등을 촬영한 명소로 주변의 다른 적산가옥보다 장중한 분위기였다.
과연 일제 때 거상(巨商)이 살던 집다웠다. 인근에는 CJ대한통운의 전신인 ‘미곡창고 주식회사’의 군산지점장 사택이 있었다. 1935년에 완공된 이 집은 군산시 향토문화유산이지만 일반인에게 개방된 공간이 아니다.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 동행한 정경옥 문화관광해설사가 집 주인과 인연이 있어 운 좋게 집을 둘러볼 수 있었다. 히로스 가옥보다 아담한 전형적 일본식 가옥으로 정원에는 우람한 향나무와 팔손이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이경산(80)씨가 이 집에 들어온 건 1965년이다.
“당시 광주에 살다가 이사를 왔는데 아내가 이 집이 꼭 마음에 든다기에 살게 됐지요. 조금 불편한 점은 있지만 50년 세월을 살다보니 정이 들어서 떠날 생각은 안 들어요. 적산가옥에 산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국경일이면 빼놓지 않고 큰 태극기를 내건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1913년에 건립된 일본식 사찰 ‘동국사’다. 한 세기 동안 원형을 유지한 사찰 한쪽에서는 증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지 종걸스님은 “방문객이 급증해 휴게 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암동 철길마을도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고추·대파를 심은 화분이 올망졸망 모여 있던 철길 옆에는 간식과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들어섰고, 할머니들이 조심조심 걷던 철로에는 교복·근대의복을 빌려 입은 젊은 커플들이 북적였다. 옛 풍경이 변치 않길 바라는 게 여행자의 이기심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푸근한 군산의 맛
근대의 재발견과 관광객의 급증, 그에 따른 상업화. 군산은 지난 어떤 세월보다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군산에는 변치 않은 게 있었다. 오직 먹기 위해 먼 길 달려갈 만한 ‘맛’이 살아있었다. 그렇다. 군산은 식도락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미식 천국이다. 군산이 자랑하는 현란한 음식, 그리고 간식까지 섭렵하려면 쉼 없이 먹어도 사나흘이 부족할 정도다.
지금 한국에서 군산은 중화요리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다. 짬뽕에 해산물과 돼지고기를 수북이 쌓아주는 집, 춘장을 넣지 않은 ‘물짜장’을 파는 집, 속이 쓰릴 정도로 매운 고추짬뽕을 내는 집. 저마다 고유한 개성을 자랑하는 중화요리집이 군산에는 많다. 그러나 1시간 줄 서서 10분 만에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군산 최고령 중국집 ‘빈해원’이었다. 60년 내력을 자랑하는 빈해원은 최대 500명을 수용한다.
영화 ‘타짜’ ‘남자가 사랑할 때’ 등을 이 집에서 찍었다. 음식 맛은? 길쭉하게 튀 겨낸 바삭한 탕수육은 씹을수록 고소했고, 짜장면은 평범했다. 별미고추초면은 너무 매워서 입에 부채질을 하면서도 젓가락이 계속 갔다.
군산에 중화요리집이 많은 건 개항 이후 중국과의 교류가 많아서였다. 정경옥 해설사는 “개화기 때부터 중국 산둥(山東)에서 건설노동자가 많이 건너왔고, 지금도 화교학교가 있을 정도로 중국과의 인연이 깊다”고 설명했다.
군산행을 충동한 물메기탕은 겨울 들어 잔뜩 맛이 오른다. 물메기는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잡히는데 찬바람 부는 1~2월에 가장 맛있다고 한다. 물메기가 제철을 맞았다는 건 군산 구도심에서 알 수 있었다. 빨랫줄에 물메기를 매달아 말리는 집이 많았다. 물메기탕은 생물로 끓여 먹기도 하지만 햇볕과 바람, 특히 겨울 바닷바람에 말려야 더 맛있다고 군산 사람들은 말한다.
군산 사람들이 추천한 ‘일풍식당’에서 일반 물메기탕과 열흘간 말린 물메기로 끓인 건메기탕을 주문했다. 국물은 감칠맛이 강한 건메기탕이 좋았고, 생선살은 계란찜처럼 부들부들한 일반 물메기탕이 맛있었다. “울혈진 속이 눈 녹듯 풀리는 맛”이라고 극찬한 소설가 윤대녕의 문장이 떠올랐다. 물메기탕 한 그릇으로 시린 겨울을 견딜 힘을 비축한 기분이었다.
군산에는 이북 피난민도 많았다. 한국전쟁 때 약 5만 명이 군산항으로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군산에 이북식 냉면을 파는 집도 있다. 54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져 온 ‘뽀빠이냉면’이 대표적이다. 처음 이름은 ‘원조평양냉면’이었다. 60~70년대 한국에서 뽀빠이 캐릭터가 유행하면서 이름을 고쳤단다. 평양냉면을 표방하는 집인 만큼 비빔보단 물냉면이 유명하다. 한데 전국의 여느 평양 물냉면과 국물 맛이 다르다. 소 사골 뿐 아니라 돼지·닭고기까지 우려내 국물을 낸다. 그리고 간장으로 간을 한다. 냉면 그릇에는 돼지·닭고기 고명을 수북이 올려준다. 김태형 사장은 “할머니가 이북 출신이지만 음식을 짜게 먹는 군산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조리법을 조금씩 변주했다”고 설명했다. 시중에서 파는 간장이 아니라 잘 숙성한 간장을 써서인지 국물에서 묘한 감칠맛이 돌았다.
항구도시를 갈 때면 어김없이 어시장을 들른다. 다행히 군산 구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망동 수산시장’이 있었다. 해망굴을 지나니 배릿한 바다 냄새가 풍겨왔다. 복작복작한 시장에서도 말린 생선을 파는 ‘건어시장’으로 향했다. 상인들은 살짝 말린 참조기·물메기·박대가 지금 제일 맛있을 때라고 했다. 3만원 어치를 샀는데 한산한 평일 아침이어서인지 덤으로 많은 생선을 얻었다. 서울로 돌아와 박대와 참조기를 기름에 구웠다.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퍼졌다. 다시 군산이 그리워졌다.
■● 여행정보
글=최승표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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