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여행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다다.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고 한적한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매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다양한 바다의 별미를 맛볼 수 있어서다.
겨울바다 여행코스로 많은 이들이 강원도 강릉을 찾는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웅장한 자태와 낭만적인 겨울바다를 간직한 동해의 시원한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의 힐링코스는 물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도보여행자들의 트레킹 코스로도 눈길을 끌고 있다.
강릉 바우길 5코스인 ‘바다호숫길’은 이러한 정취를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길은 이름 그대로 바다와 호수를 항상 곁에 둔다. 바다를 따라 혹은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도, 호수를 따라가며 느긋하게 산책할 수도, 향기로운 커피향에 취할 수도 있는 길이다.
출발지에서 경포호까지 해변길, 경포호 주변길, 경포호에서 도착지까지 해변길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바다와 경포호 가운데 일부만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경포호 주변길은 가족끼리 연인끼리 4인승 또는 6인승 자전거를 빌려 탈 수도 있다.
출발은 사천항에서 남으로, 남항진에서 북으로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좋다. 사천해변공원에서 길을 나선다. 백두대간에서 이곳 바다 쪽으로 뻗어 내리는 지맥과 하천이 교산(蛟山)과 사천이다. 교산의 구릉과 사천의 시내가 나란히 바다로 들어가며 만나는 백사장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놓여 있다. ‘교문암(蛟門岩)’이다. 크지는 않지만 가운데 아래위로 갈라져 있어 어린애 엉덩짝처럼 생겼다. 여기에 전설이 있다. 바위 속에 웅크려 있던 늙은 이무기가 바위를 깨뜨리고 바다로 나가면서 두 동강이 나 문(門)처럼 생긴 바위라 해서 이름지어졌다.
이곳에 홍길동전을 쓴 풍운아 허균의 일화가 서려 있다. 어려서부터 누나 허난설헌은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선녀를 자처했고 허균 역시 교산에 엎드려 있다 용으로 승천할 이무기라고 여긴 몽상가·풍운아 남매였다. 허균은 용이 돼야 하는 이무기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스스로 믿어 호를 ‘교산’이라 짓는다. 금이 간 바위는 절리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어 반쪽으로 갈라질 징조라고 한다. 그 옆 바위에 새겨진 ‘영락대’는 옛날 강릉지방 영락계(契)를 하던 강릉 선비들이 이곳에 자주 모여 풍류를 즐기면서 바위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사천을 건너면 야트막한 언덕 아래 쌍한정(雙閒亭)이 서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삼가정(三可亭) 박수량과 당숙인 박공달이 세운 정자다. 박수량은 1504년(연산군 10년)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모친상을 당한 뒤로는 과거에 응하지 않았다. 연산군 때 단상제(短喪制·상례 기간을 단축시킨 제도)가 엄했으나, 모친상을 당하자 선왕(先王)의 제도를 어길 수 없다해 3년 동안 최복(衰服)을 입고 여막에 살았다. 뒤에 현량(賢良)으로 천거돼 용궁현감(龍宮縣監) 등을 지내고 1519년(중종 14년) 기묘사화로 파직돼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시와 술과 담론으로 여생을 보냈다. 천성이 순수하며 후하고 소박했으며 지조가 구차하지 않고 효행이 있었다. 쌍한정 옆에 박수량의 효비각이 있는데 효비각 안에는 효자비와 효자각기가 있다.
이어지는 해송(海松)숲은 바다호숫길의 진정한 주인이다. 걷기 좋게 폭신한 흙길 주위로 빽빽하게 하늘 높이 쭉쭉 솟은 소나무숲이 풋풋한 솔 향내와 푸른 바다 내음을 그대로 전해준다. 바닷바람을 막으려 심기 시작한 소나무답게 다들 육지 쪽으로 은근슬쩍 기운 모습도 특이하다. 멀리 바다에 시선을 던지면 탁 트인 전망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코스 한가운데에 악센트를 주듯 경포호가 있다. 경포호 주위 볼거리가 쏠쏠하다. 호숫가의 홍장(紅粧)암은 경포팔경의 ‘홍장야우(紅粧夜雨)’에 해당되는 바위다. 고려 말 강원도 안렴사로 강릉에 머물러 있었던 박신(朴信)이 강릉 출신 기생 홍장과 함께 배를 타고 사랑을 나눈 이야기가 전해진다. 홍장암에는 수령 30∼40년 된 벚꽃나무가 있으며, 바위에는 ‘이가원(李家園)’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경포호를 둘러싸고 금란정, 방해정, 해운정 등 12개의 정자가 들어섰다. 그중 대표적인 정자가 경포대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구조다. 1326년(고려 충숙왕 13년) 강원도 존무사(存撫使) 박숙정(朴淑貞)에 의해 신라 사선(四仙)이 놀던 방해정 뒷산 인월사(印月寺) 터에 창건됐으며, 그 뒤 1508년(중종 3년)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1626년(인조 4년) 강릉부사 이명준(李命俊)에 의해 크게 중수됐는데, 인조 때 우의정이었던 장유(張維)가 지은 중수기(重修記)에는 태조와 세조도 이 경포대에 올라 사면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고 쓰여 있다.
현재의 경포대 건물은 1745년(영조 21년)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세운 것으로서, 낡은 건물은 헐어내고 홍수로 인해 사천면 진리 앞바다에 떠내려온 아름드리 나무로 새로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873년(고종 10년) 강릉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건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현판은 헌종 때 한성부 판윤을 지낸 이익회(李翊會)가 쓴 것이다. 유한지(兪漢芝)가 쓴 전자체(篆字體)의 현판과 ‘第一江山(제일강산)’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第一江山’이라는 편액은 ‘第一’과 ‘江山’의 필체가 다른 점이 특이하다. 경포대에 올라 호수를 내려다보면 마음이 잔잔해진다. 멀리 보이는 월파정이 호수 한 가운데 예쁘게 떠있다. 경포호 그림이나 사진에 꼭 등장하는 새바위(조암) 위에 서 있는 누각이다.
강릉은 커피로도 유명하다. ‘커피의 장인’들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이 100여개나 된다. 서울에서 이름난 바리스타들이 강릉으로 이주하면서 생겨난 지역문화다. 바다호숫길 종점 남항진해변 직전 안목해변에 커피거리가 조성돼 있다. 푸른 바다 풍경을 앞에 두고 짙은 향의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온 몸의 피로가 자연스럽게 풀리고 바우길의 운치가 절로 돋는다.
여행메모
17개 코스, 280㎞ 바우길 한국 3대 걷기길… 자연산 홍합·부추·버섯 등 넣은 섭국 별미
강릉 바우길은 제주 올레,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한국의 3대 트레킹 코스로 자리 잡았다. 현재 17개 코스, 총연장 280㎞의 트레킹 코스로 만들어져 있다. 강원도와 강원도 사람을 친근하게 부르는 ‘감자바우’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강원도의 산천답게 인간친화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이름이다. 또 바우(Bau)는 그리스 신화의 모태와도 같은 바빌론 신화에 손으로 한 번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죽을 병을 낫게 하는 건강의 여신이다.
대관령 동쪽에 비슷한 지역 안에 있지만 코스마다 모습이 달라 서로 비슷한 길이 없다. 첫 구간으로 대관령 휴게소에서 출발하는 ‘선자령 풍차길’처럼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밟기도 하고 ‘대관령 옛길’처럼 조상들의 발길을 따라 역사와 문화유적을 살피며 산맥에서 바다로 나아가기도 한다.
강릉은 바다를 끼고 있어 해산물 요리가 풍부하다. 특히 사천해변에 물회단지가 조성돼 있다. 시원한 물회도 맛나지만 이곳의 섭국도 별미다. ‘섭’은 자연산 홍합을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 자연산 홍합에 밀가루로 옷을 입히고 미나리, 부추, 버섯 등의 야채를 넣고 매콤하게 끓인 탕이 섭국이다. 양식이 불가능해 직접 채취해야 한다. 맛뿐만 아니라 피로회복을 돕는 타우린과 노화 유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비타민A와 C도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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