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정이 성지를 나와 처음 버스에서 내린 어은골 앞으로 갔다. 어은교 아래 백로인가? 얼룩이도 있네. 백로는 흰색, 갈색, 회색, 청색이 있는데 얼룩 무늬나 무늬가 있는 종도 있다고 한다. 그럼 얘도 백로? 검색해 보니까 왜가리인 것 같다. 백로도 왜가리과에 속하니 사촌지간이겠네.
어은골 앞의 쌍다리
예전엔 이런 줄을 쳐놓지 않아도 다들 잘 다녔을 텐데 요즘엔 본인 부주의로 사고가 나도 관을 원망하고 책임을 묻는 세상이 되다보니 씁쓸하다.
나팔꽃
진북교
개망초
도토리골교
도토리골교 난간의 다람쥐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 물가로 내려가 걸어본다.
기생초
나팔꽃
수크령
다시 올라가서 차도 옆 인도를 따라 걷자.
보이는 다리는 다가교
다가교
완산교
서천교
서천교 순교터에 있는 순교 기념 모자이크 벽화, 2006년 설치된 것으로 조윤호(요셉)이 1866년 12월 23일 순교 장면을 앞뒤로 담고 있다. 18세의 어린나이에 순교한 조윤호 성인은 충청도 신창에서 태어나 돈독한 신앙 생활을 어려서부터 익혀왔다. 1864년 부친을 따라 전주 근처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한 후 이 루시아와 결혼한 그는 1866년 12월 5일 부친 조화서, 정원지, 이영서 등과 함께 성지동을 박해를 위해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된다. 전주 감영에서 부친과 여러 차례에 걸친 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부친인 조화서는 일찍이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전교활동을 도왔으며 그는 1839년 기해 박해로 부친 조 안드레아(성 조윤호의 조부)가 순교하자 충청도 신창으로 이주해 한 막달레나와 결혼, 아들 윤호를 두었다
아버지 조화서는 후손이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관장의 유혹이 여러번 있었으나 모든 유혹과 형벌을 이겨내고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다. 그리고 아들 조윤호는 역시 부자를 한날 같은 장소에서 처형하지 않았던 당시의 관례에 의해 부친이 참수된 지 열흘이 지난 12월 23일 인근의 서천교 밑에서 순교했다. 조윤호 성인의 처형 방법은 참으로 참혹했는데 서천교 밑에서 빌어 먹던 거지들에게 조윤호 성인의 목을 감은 끈을 서로 조르게 하여 결국 순교하고 말았다. 조윤호 성인은 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아, 참으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역사이다.
전주 남부 시장
매곡교
초록바위는 완산동에서 좁은 목으로 통하는 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일부 잘라졌고 그 위치는 훼손되었으나 그 후 순교한 위치를 찾아 초록바위 길 건너편 전주천변에 초록바위 성지를 만들었는데 초록바위는 곤지산 마지막 자락으로 조선 조에 주로 죄인들의 형벌을 취하던 곳으로, 1886년(병인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남종삼(요한)의 14세 된 아들 남명희와 순교자 홍봉주(토마스)의 아들이(이름은 미확인) 수장된 곳이다
이 두 가정은 온 가족을 처형하거나 노비로 삼고 가산을 몰수하는 혹형을 받았는데 당시 남명희와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홍봉주 아들은 당시 14세에 불과하여 조선 국법의 기준이 15세가 넘어야만 처벌할 수 있게 되어 15세가 되기까지 전주감옥에 수감했다가 나이를 채워 전주천에 밀어 넣어 죽였다고 한다. 참으로 잔혹한 역사의 한 면이다.
초록바위 순교터의 순교 기념 모자이크 벽화. 2006년 설치된 것으로 성 남종삼의 아들 남명희와 순교자 홍봉주의 아들 모습과 순교 장면을 앞뒤로 담고 있다. '성 남종삼'은 한국 교회사 안에서 가장 높은 벼슬까지 올랐던 인물로 러시아의 침입으로 조선이 시끄러워지자 프랑스 주교의 힘을 빌어 외교력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으나 이것이 적기에 이뤄지지 못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대원군의 심기를 건들여 1866년 1백년 한국 천주교회사 안에서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된 병인박해를 발발하게 된다
성 남종삼은 서울 인근에서 체포되어 의금부로 연행되어 홍봉주, 이선이, 최형, 정의배, 전장운 및 베르뇌 주교, 다블뤼 부주교 등과 함게 문초를 당하고 그해 정월 21일 홍봉주와 함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된다. 이어서 남종상에게 많은 믿음을 가르쳤던 그의 부친 남상교는 공주 진영으로, 장자인 남규희는 전주 진영으로 끌려 가 각각 순교하였고 처 이소사는 창녕으로 노비로 갔다가 순교하고, 당시 14세의 어린 나이에 붙잡혀 갔던 명희는 전주 감옥에서 수감한 뒤 나이가 15세에 이르자 전주천에서 수장되는 등 성 남종삼 가족은 3대가 순교하는 박해를 당했다고 한다.
홍봉주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홍낙민의 손자이며, 부친 홍제영 역시 기해박해 때 순교한 바 있다. 모친 정소사는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 정약종의 믿형인 약현의 딸로 기해 박해때 남편과 함께 순교하여 4대가 순교한 집안이다.
싸전다리는 전주교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다시 본래 이름을 되찾은 다리로 예전엔 다리목을 끼고 쌀가게들이 늘어져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싸전다리
남천교
남천교 위의 청연루
정면에 보이는 산이 치명자산이라고도 하는 승암산
승암산 아래 다리 왼쪽 뒤에 함벽당이 있다. 이번 전주 여행에서는 완주로 넘어가 화암사를 들렸다 갈까 했는데 못말리는 이 아짐이 오지랖 넓은 짓을 또 해서 일정을 접고 귀경을 하게 되었다. 초록바위 순교터를 가다가 할머니들께서 집에 키운 거라며 여주(비터멜론)를 팔고 계시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두 할머니 것을 덜컥 사고 말았다. 계산을 하고 무겁게 들고 오면서 "나 또 뭐한 거니? 못말린다. 정말 . . ." 후회해도 소용없는 현실, 그래서 전주역으로 가서 서울행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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