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강릉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

智美 아줌마 2009. 5. 3. 19:16

 

강원도 강릉시가 전통문화시범도시 및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하나로 경포도립공원에 건립했지만 2년이 넘게 개관을 하지 못하는 등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매월당 김시습(金時習.1435∼1493년)기념관이 2008년6월15일 임시 개관했다. 강릉시에 따르면 김시습 기념관은 전통한옥 형태로 도비와 시비 등 23억원을 들여 운정동 288의 1번지 일대 3천117㎡ 부지에 건축면적 358㎡ 규모로 건립했다.

이 기념관은 이미 2005년 3월 준공됐으나 운영주체인 ㈔매월당문학사상연구회와 기부채납 문제로 개관이 몇 차례 연기되는 등 2년이 넘게 자물쇠로 잠겨 있는 등 잡초만 무성해 오히려 강릉 관광의 애물단지가 되었지만 지금은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김시습은 본관 강릉(江陵). 자 열경(悅卿). 호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 법호 설잠(雪岑). 시호 청간(淸簡)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등을 정리했으며 《산거백영》을 썼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부친 김일성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읊었다 하며, 5세 때 이 소식을 들은 세종에게 불려가 총애를 받았다.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 몸을 의탁했으나, 3년이 채 못 되어 외숙모도 별세하여 다시 상경했을 때는 아버지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적 역경 속에서 훈련원 도정(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그의 앞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매월당 김시습에 대하여서는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자주 접하던 인물이다.
어떤 인물인가는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 . . ㅎㅎㅎ

선교장 입구에서 내려 길을 물으려고 동사무소(?)엔가 들어갔는데 그곳 직원이 선교장에서 경포호 쪽으로 올라가면 매월당 기념관이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해운정이 있고 길 따라 쭈욱 올라가면 경포호가 나온다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매월당 기념관과 해운정을 둘러 보게 되었지만 다리품 좀 팔았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