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기암괴석의 청송 주왕산

智美 아줌마 2014. 10. 30. 14:00

주산지에서 20여 분 버스를 타고 주왕산으로 왔다. 주왕산은 여러 번 와 봤지만 늘 제3 폭포까지 올라갔다가 원점 회귀만 했는데 다음에는 장군봉이나 가메봉 코스 산행을 해봐야겠다. 산길은 길지만 완만한 구간이 많아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 않을 것 같아 도전해 봐야겠다. 처음 주왕산에 도착하면 누구나 희안하게 생긴 바위 봉우리들 보고 감탄사를 자아 내는데 나 또한 어떻게 저렇게 생겼을까 신기해 했다.

 

 

주왕산은 해발 720m로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 하여 석병산이라고도 하며 신라의 왕족 김주원이 머물렀다 하여 주방산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이곳에서 수도할때 이 산을 주왕산이라 부르면 이 고장이 번성할 것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라는 설과 당나라때 후주천왕을 자처하며 군사를 일으킨 주왕이 실패하자 멀리 이곳으로 피신을 하여 당이 신라에 주왕을 잡아 달라고 요청하자 촛대봉에서 주왕은 신라장수 마일성이 쏜 화살에 맞아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 이름인 주왕을 붙여 주왕산이라 부른다 한다.

 

 

이 봉우리가 주왕산 산세의 특이함을 대표하는 기암이다. 이 기암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울퉁불퉁한 화강암 바위와 달리 그 생김새가 매우 매끄러워 보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기암을 구성하는 석질의 성분 때문이다. 기암은 화산재가 용암처럼 흘러내려가다가 멈춰서 굳은 회류응회암으로 된 봉우리인 것이다. 이 기암처럼 주왕산의 봉우리들은 화산이 격렬하게 폭발한 뒤에 흘러내리면서 굳은 회류응회암으로 되어 있다.

 

장군봉

 

주왕이 신라의 마일성 장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일 때 이 바위를 마치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해 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대전사 담장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72년(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919년(태조 2년)에 주왕의 아들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의 자세한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나, 조선 중기 실화로 전소된 뒤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형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된 보광전, 명부전, 산령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백련암, 주왕암 등이 있다.

 

유물로는 보광전 앞의 삼층석탑 2기와 사적비·부도 등이 있으며, 현재의 사찰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흔적이 있는데, 이 우물은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원래 이 절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를 매일 냇가에서 길어다가 올리고는 하였다. 이를 귀찮아한 승려들은 조선 중기 앞뜰에 우물을 파서 그 물을 길어 청수로 사용한 뒤 화재가 나서 절이 불타버렸다. 그 뒤 성지도사가 와서 이 절의 지세가 배가 바다에 떠서 항해하는 부선형 혈인데, 여기에 우물을 파니 배 바닥에 구멍이 뚫어진 격이 되었기에 불이 나서 절이 타게 되었다면서 우물을 메우게 하였다고 한다.

 

 

보광전(오른쪽 보물 1570호 왼쪽 관음전)은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대사가 처음 건립하였다 전하고 임진왜란때 불타 조선 현종 13년(1672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보광전 앞의 3층 석탑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것을 조합한 것이라고 한다.

 

명부전

 

명부전의 지장탱화는 1806년에 제작되었으며  지장보살상과 여러 보살상이 입은 가사 문양이 화려하고 필선이 세련되었으며 제작기법이 뛰어난 조선후기 대표적인 불화이다. 특히 지장보살의 머리에 원형의 두광, 신체에 키모양에 가까운 신광이 둘러져 있고, 채색이 짙어지고 물감이 두껍게 칠해지는 경향이 현저하여 따라서 조선시대 후기의 불화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자료 사진)

 

응진전

회연당

 

주왕산 주방천 계곡으로 가는 길

솔부엉이

 

 

아들바위, 돌을 던져 안떨어지고 올려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주방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걸어 올라간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정자 오른쪽 나무 의자에 민달팽이가 있었는데  아직 살아 있을까? ㅎㅎㅎ

연화봉

 

급수대

 

시루봉

 

 

 

 

학소교

 

 

 

 

 

 

 

제1 폭포 용추 폭포 아래

 

제1 폭포 용추 폭포

선녀탕

 

 

 

 

제2 폭포로 가는 길

 

제2 폭포  절구 폭포

 

되돌아 나가서 제 3폭포인 용현 폭포로 간다.

제3 폭포인 용연 폭포가 보인다. 예전에 없던 나무 태크 계단 길로 만들어 놓았네. 일방 통행으로 폭포  위에서 바로 내려가라고 되어있다.

 

우와 ~ 내려가야 할 계단이 장난 아니네.

 

굴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볼 때마다 신기하다.

 

 

아래 폭포로 내려가면서 본 물줄기

아래 폭포

 

올라가는 계단, 에구 ~ 힘들어라.

 

 

 

다시 학소교로 와서 주왕암과 주왕굴로 간다.

 

여기도 나무 태크로 깔아 놓았네.

오른쪽 연화봉

 

 

전에 왔을 때 있던 전망대 위로 올라간다.

 

 

연화봉

병풍 바위

급수대

 

 

주왕암, 대전사의 부속암자로 919년에 눌옹 대사가 대전사와 함께 창건한 사로 이곳에 은거하였던 동진의 주왕을 기리기 위하여 주왕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입구의 가학루를 들어서면 오른쪽에 요사채가 있고 한 단 위에 나한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산신각이 있다. 가학루는 중층 누각이며, 나한전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6나한이 봉안되어 있는데, 나한이 영험이 있다고 하여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다.

 

 

 

 

오래 전에는 이런 철계단이 없어 그냥 바위 타고 기어 올라갔다. 앞 전에 왔을 때는 통제해 놔서 못보고 갔는데 이번에 오니까 계단이 되어있다..

 

 

 

주왕암과 주왕굴도 둘러 봤으니까 이제 내려 가서 달기 약수로 간다.

내려가면서 보이는 연화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