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뉴스를 보다가 사건 사고도 많고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는 사람도 끊이지 않고 . . . 가끔 경복궁에 가려고 풍문여고 앞 버스 정거장에 내리면 이 높은 담을 지나가게 되는데 도대체 이 안에 뭐가 있기에 이렇게 높게 담을 쌓아 놓은 것인지 늘 궁금했다. 알고보니 옛 미국 대사관 숙소 부지라고 한다. 대사관 숙소 부지치곤 엄청 넓다. 이 땅에 7성급 호텔을 짓고 가칭 문화 관광 타운을 조성 하겠다고 2008년 6월 삼성생명으로부터 경복궁과 풍문 여고와 덕성 여고 인근에 있는 이 땅을 매입한 대한항공이 문화재 지표조사와 문화재 발굴, 서울시 도시 관리 계획 및 사전 환경 검토 등 행정 절차를 마치고 2010년 3월 서울중부교육청에 학교 환경 위생 정화 구역내 금지 행위 및 시설 해제를 신청했으나 중부교육청 산하 학교 정화위로부터 부결 처분을 받아 현재 공터로 있게 되었다고 한다. 큰 문 틈으로 들여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 가니까 볼록 거울이 설치 되어 있어 안을 볼 수 있게 되어 사진을 찍어와 확대해서 보니까 넓은 공터에 문 안쪽에 초소나 경비실같은 작은 건물이 있다. 그동안 궁금했던 게 풀렸지만 몇 년째 빈터로 남아 있는 게 아깝다. 주변 고궁과 어울릴 수 있는 건물이 들어서면 좋겠다. 옛 한국일보 터에 지은 트윈트리타워는 앞에 경복궁 동십자각을 병풍처럼 배경이 되어줄 수 있게 배려해서 지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동십자각이 잘 보이게 주변 건물들이 유리를 사용해 반짝이는 것과 달리 트윈트리타워는 일부러 선을 흐트러뜨려 바탕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동십자각은 조선 말기의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양식의 사모지붕건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호. 경복궁의 궁담 동남 모서리에 위치했던 망루로서 1880년 무렵에 건립되었다.본래 경복궁 외궁성이 영추문을 향하여 꺾어지는 부분에 있었던 서십자각과 같은 규모로 그 위치가 서로 대칭되도록 지어졌던 것이다. 현재 서십자각은 없어졌고 민족항일기 때 중앙청을 지으면서 광화문을 옮기고 홍례문을 헐고 궁성을 철거할 때, 양 날개의 담장을 모두 잃어 지금과 같이 길거리에 남게 되었다. 규모는 비록 작으나 공예·조각 기법이 잘 조화되어 광화문 동익루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고 있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한다. 경복궁 주차장 입구 쪽으로 들어가면 청와대 관람 안내소가 있다. 먼저 관람할 사람들을 태우고 버스가 출발한 뒤 나머지 사람들은 대기실로 들어가 깔끔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청와대 관람 버스를 타고 춘추관 앞에 도착한 뒤 본인 확인과 소지품 검사를 한 뒤 도보로 이동을 하는데 사진 촬영이 허용 되는 곳은 단 3곳으로 녹지원, 본관, 영빈관이고 그 외에는 사진 촬영, 특히 동영상 촬영은 금지 되어있는데 만약 도촬을 하면 관람 중에 퇴출 된다고 한다. 이제 셔틀버스를 타고 춘추관으로 들어가서 소지품 검사하고 검색대를 거쳐 들어가서 청와대 소개와 관람 유의 사항 영상을 본 후 관람을 한다. 춘추관은 청와대 안의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기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는 건물로 한국 언론사 기자 78명이 상주하는 청와대 내의 프레스센터이다. 1층은 공보비서실과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 및 담화발표 등을 하는 소회견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는 대통령 기자회견 및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다목적실이 있다. 1990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축 양식은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얹은 현대식 한옥이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예문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녹지원은 원래 경복궁 후원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채소밭이 있었으며, 과거를 보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관저의 정원이 되면서 가축사육장과 온실 등의 부지로 이용되던 것을 1968년에 전체 면적에 잔디를 깔고 정원으로 조성했다. 이곳에는 수령 160년, 높이 16 m의 한국산 반송이 있어, 녹지원이라 명명했다. 야외행사장으로 이용되며 매년 어린이날,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에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된다. 왼쪽에는 금강송, 오른쪽은 160년 된 반송 반송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땅에서 부터 여러갈래의 줄기로 갈라져 부채를 펼친 모양으로 자란다 적송과 반송 사이로 상춘재가 보인다. 상춘재는 외빈접견 등에 사용되는 전통적인 한옥으로 기와를 올린 목조 건물로 방 2칸, 부엌, 마루, 화장실, 대기실 각 1칸에 지하실이 갖춰진 청와대 부속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일식 목조건물 상춘실을 철거하고, 1978년에 그 자리에 천연슬레이트 지붕의 양식 목조건물을 지어 상춘재로 명명하다가, 1983년 형태 변경 없이 목재로 보수하여 연건평 382㎡의 목조 한옥을 완성했다.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이용되는 상춘재는 청와대 경내에 최초로 건립된 전통 한옥으로서, 주기둥에는 200년 이상된 춘양목(홍송)을 사용했다. 그 이전까지 외국 손님에게 소개하지 못했던 한국의 가옥 양식을 보여 줄 수 있는 곳이다. 청와대는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1960년 8월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명명으로 제1공화국의 대통령 관저명 ‘경무대’로 불려오다가, 그 해 8월 13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이 선출되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개명하였다. 이 명칭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에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밖으로 후원에 해당하는 이 지대를 경무대라 하였다. 북악산 산록에 위치하여 서울 장안을 전망할 수 있는 이 경무대는 어영(조선시대, 인조반정 뒤에 조직한 군대의 하나)의 연무장이나 과거장으로서, 또는 친경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울안에는 원래 융무당과 경농재(조선 말엽 경복궁의 뒤뜰에 있던, 각 도의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못됨을 알아보던 집) 등이 있었으나, 일제강점 후 1927년 일제에 의하여 헐리고, 일본인이 조선총독 관저를 건립하였다. 이곳을 제7·8·9대 조선총독이 관저로 사용하였고, 광복이 되어서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지(Hodge,J.R.)중장이 사용하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한국정부로 이관되어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청와대 건물은 1991년 9월 4일 신축되었다. 1939년 7월 조선총독부 총독 관저로 건립된 옛 청와대본관은 1993년 8월 대통령 지시로 철거되었다.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회의실 등을 포함하고 있는 건물이다. 외부는 전통 목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건축되었고, 내부는 현대적인 건축양식과 시설을 갖추고 있다. 2층 본채와 좌우 별채·현관채로 구성되며, 안마당과 앞마당이 있다. 본채는 팔작지붕 건물로 청기와를 얹었다. 본관에 쓰인 청기와는 약 15만 장으로 도자기를 굽듯이 한 개씩 구워낸 것들이다. 100년 정도를 견디는 강도를 가졌다고 한다 본관 1층에는 대통령 영부인의 집무실로 사용 되었고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기능별로 몇 개의 방과 회의실이 마련돼 있는데, 그 중 집현실에서는 대통령이 고위 참모진과 회의를 하거나 때로는 외국 국가원수들과 정상회담을 열기도 하고 인왕실은 접견실로 활용되고, 백악실은 10명 내외의 인원이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왼쪽 별채 세종실은 회의실 및 접견장으로 사용되는 건물로 북쪽 벽면에 일월도가 그려져 있고 남쪽 벽면에는 훈민정음 일부분 장식되어 있다. 오른쪽 별채 충무실은 식당 겸 만찬장으로 사용되며 내부에 진연도 병풍과 산수화가 장식되어 있다. 본관 건물 왼쪽에는 인왕산이 버티고 있고 뒤에는 북악산이 자리하고 있다. 인왕산을 달리 필운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왕산이 임금이 계신 궁궐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군주는 오른쪽에서 모신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경복궁을 지을 당시에는 도성의 주산을 인왕산으로 삼자는 무학대사와 북악산이 주산이라는 정도전의 주장이 맞섰다고 한다. 정도전은 예로부터 제왕이 남쪽을 향하여 다스렸지 동쪽을 향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는 논리를 지속적으로 펼쳤고 결국엔 정도전의 주장대로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고 경복궁이 들어섰지만 무학대사는 끝까지 반발하며 2백년 뒤에 가면 내가 옳았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도성을 세운지 2백년 뒤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등 큰 변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니 무학대사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영빈관은 1978년 12월에 준공되었다.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건물로서, 전면에 있는 4개의 돌기둥은 높이 13m, 둘레 3m이며 2층까지 통으로 뻗어 있다. 내부는 무궁화, 월계수, 태극무늬가 형상화되어 있다. 외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방문했을 때 한국을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 행사장으로 이용되며,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 쓰인다. 2층에도 1층과 똑같은 방이 있는데 1층은 접견장으로, 2층은 만찬장으로 이용된다 앞의 기둥 4개는 통째로 깎아 세웠지만 나머지 기둥들은 속에 철골을 세우고 대리석으로 감싸 놓은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 관람 인중 샷!! 청와대 관람증 관람을 마치고 밖에서 본 영빈관 사람들을 피해 사진을 찍으려고 앞에 또는 맨 뒤에서 이동하며 사진을 찍으니까 관람객을 벗어날까 봐 경호원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내 주변을 서성이며 따라 다녔다. 그참에 깔끔하게 청와대 풍경을 담을 수 있었는데 청와대 들어가서 첫 느낌은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 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된 길 외에는 온통 연둣빛 잔디가 깔려 있고 푸른 숲과 예쁜 소나무가 참 많았다.
청와대? 도대체 청와대에서 뭘 어쨌다고 툭 하면 청와대 앞에서 진을 칠까? 일선에서 일하는 인간들이 다 해쳐먹고 부정부패 일삼은 것이지 대통령이 그렇게 살라고 했나? 그래서 청와대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는데 오잉? 청와대 관람이 있네. 일반인도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을 난 왜 여태껏 모르고 있었는지 바부탱이 ㅎㅎㅎ
월 1회 신청 가능하다고 해서 날짜를 보니 두 세 달 후까지 예약 완료 된 날이 대부분이라 나야 어차피 날짜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 이 한 몸 관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을 찾아 신청을 하였다. 또한 만약에 날씨가 비가 오거나 좋지 않을 것을 대비해 9월에도 또 신청을 해두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관람 당일 30분 전에 경복궁 내 청와대 관람 안내소로 나오라고 해서 일찍 갔더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루 4회 매 회당 백 여 명 정도 관람을 한다는데 초딩이 아이들과 동행한 사람도 많았다.
단체로 이동하다보니 잘못 행동하는 어른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한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물 좀 먹일 수 있냐고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 쉼터에서 먹이고 오라고 알려주니까 이런 ~ 애들이고 어른들이고 우르르 몰려 가서 정수기 한 대에 붙어서 물을 먹겠다고 난리들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뭐냐고? 몇 십 명 물 먹고 올 동안 때약볕에 서서 기다리게 하다니 이래서 우리나라 국민성이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관람 시간이라야 1시간 정도인데 아이가 물을 먹고 싶다고 해도 여러 사람이 함께 이동을 해야 되니까 참는 것도 가르쳐야지, 그리고 더운 날에 아이와 동행하면 물 정도는 챙겨 와야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애 물 좀 먹이고 온다니까 어른들까지 몰려가서 물을 먹어야 되겠느냐고? 정말 한심한 사람들 많다. 내국인만 있는 게 아니라 외국인 관람객들도 있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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