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풍경이 좋기로 유명한 거제도 14번 국도. 북병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바다를 앞둔 자리를 지나면 인상적인 마을이 나온다. 기린 목처럼 길고 개미허리처럼 가늘어 보이는 땅 옆으로 바다가 넘실대는 구조라마을이다. 좁고 긴 마을 너머로 작은 산도 있으니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단박에 박힌다. 묘한 매력에 이끌리듯 구조라마을에 진입했다.
구조라마을 안내도
자라목 위 자리잡은 작은 어촌 마을
입춘이 한참 지났지만 날씨가 조금 풀린 겨울 같으면서 봄이라기엔 아직 추운 요즘, 빛을 발하는 것이 반도의 남쪽이다. 제주도가 좋겠지만 교통편이 부담스러울 땐 거제도가 좋은 대안이다. 거제대교로 이어져 접근성이 용이하며 따뜻한 분위기가 진하다.
거제대교 넘어 남해를 옆에 두고 이동하며 즐기는 풍경들. 평화로워 보이는 바다, 알알이 박힌 섬, 어촌의 옹기종기 모인 지붕들, 항구에 정박 중인 배 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거제도만의 특징이라면 굴곡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선과 그 주변의 풍경이다. 사람들 손이 닿으면서 단조로워졌지만 인적이 드문 해안가는 태곳적 복잡한 해안선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들쑥날쑥한 거제도 동쪽의 해안선을 따라 거제대로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면 구조라마을의 항구에 이른다.
구조라마을의 서쪽에는 고운 모래, 완만한 곡선의 해수욕장이, 동쪽에는 배들이 정박하는 항구가 있다. 이 항구는 예로부터 일본과 해상교통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됐으며 1971년 국가 어항으로 지정돼 장승포 같은 대규모 항구와 더불어 포구로서 제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구조라에서 가까운 내도, 외도, 해금강을 경유하는 유람선을 탈 수 있어 관광지로도 입지가 높다. 낮에는 해수욕장 겨울바다에서 조용히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를, 밤에는 항구의 야경을 놓치지 마시라.
방파제에서 보이는 풍경. 왼쪽이 수정산, 오른쪽이 북병산, 가운데 오목한 곳이 구조라마을이다.
항구 특유 내음을 맡으며 방파제에 이르니 겨울바람이 거센데도 낚시꾼이 제법 많다. 벵에돔이 잘 잡힌다고 하며 전갱이, 도치 등 다양한 어종이 낚인다고 한다. 해안선을 따라 좀 더 남쪽으로 돌아가면 작은 자갈 해변이 나온다. 그리고 수정산과 바다가 만나는 남단이기도 하다. 멀리 내도, 외도가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해금강이다. 한반도의 삼면이 바다인 것처럼 구조라 또한 비슷한 형상을 띄고 있다.
자라의 머리처럼 솟은 수정산
길의 끝은 수정산 등산로로 이어진다. 항구에서 방파제, 자갈 해변, 수정산이 길을 따라 놓여있으니 가이드가 필요 없다. 그냥 바다를 옆에 두고 걸으면 자연히 구조라마을 구석구석을 다니게 되는 셈이다. 수정산은 해발 150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산으로, 북쪽의 북병산의 남쪽 맥이 바다에 닿기 전 솟은 산이다. 구조라마을의 진산(鎭山)이라면 진산이겠다.
수정산의 4부 능선 즈음, 초소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 초소가 있다는 것은 해안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라는 뜻일 터. 자리의 이점을 살려 전망대가 설치됐으며 전경 사진에 섬 이름을 기록한 안내판이 있다.
성터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남해의 바다는 여름보다 눈부시다. 정오임에도 지평선에서 그리 멀리 떠 있지 않은 해와 바다의 눈부신 햇살이 가깝다. 뭉게구름이 해를 가릴 때에는 구름 틈 사이로 샌 햇빛이 바다에 뜨문뜨문 앉는다. 뭉게구름도 이곳이 좋은지 영 움직이는 티가 나지 않는다. 그 아래로 바다와 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해를 어머니의 품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잦은데, 그 따뜻함이 전해지는 듯하다. ‘그야말로 자연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풍경에 어선이 하나 지나가니 영화처럼 감미롭다.
초소에서 정상까지 30분이면 충분하다. 사면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겨울산의 휑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와 섬이 펼쳐지니 허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수정산의 정상에도 전망대가 설치돼 있는데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 두 개의 데크가 있다. 남쪽으로는 바다를 보기 좋고 북쪽으로는 마을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수정산과 북병산 사이 상하로 오목하게 파인, 좌우로도 오목하게 파인 허리에 구조라 마을이 옹기종기 붙은 모습이 정겹다. 예로부터 수정산이 자라의 머리, 좁은 땅이 자라의 목이라 여겨 조라목, 조라포, 목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북쪽으로는 북병산이 좌우로 부채를 펼친 것처럼 듬직하게 솟으니 차가운 북풍도 마을을 비켜간다. 구조라마을이 참 좋은 자리를 잡았구나 싶다.
구조라성에서 역사를, 윤돌섬에서 전설을
구조라 성벽 |
윤돌섬 |
마을을 정면으로 능선을 내려가다 보면 구조라성의 흔적인 성벽을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왜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성종 원년에 구성된 거제칠진 중 하나이다. 임진왜란 후에는 옥포진 옆으로 옮겨지었다가 다시 현 위치에 돌아와 ‘구조라진’이라는 명칭이 붙어 현재 경상남도기념물 제204호로 지정돼 있다.
성벽을 따라 수정산과 마을의 중간지점에 이르면 구조라 해수욕장의 바다 가운데 작은 섬이 하나 오롯이 떠 있는데 ‘윤돌섬’이라고 하며 효자의 구구절절한 전설이 담겼다.
옛날, 해선이라는 절세미인 해녀와 함께 가정을 꾸린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에서 일하던 해선은 배와 함께 태풍에 밀려 사라지게 된다. 이날 이후 어부는 밤마다 바다에 나와 해선을 부르며 달만 멍하니 쳐다봤다. 이 모습을 지켜본 주민은 그 어부를 '망월'이라 불렀다.
이때 과부와 그의 아들 3명이 현재 윤돌섬이라 불리는 섬에 정착하게 된다. 졸지에 홀아비가 된 늙은 어부와 과부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이가 됐다. 과부가 사는 섬은 썰물 때가 돼야만 마을까지 걸어서 갈 수 있었고 그때마다 과부는 아들 몰래 그 홀아비를 찾아갔다. 이들 관계를 알게 된 윤씨 아들들은 겨울에 버선을 벗고 바닷물에 발이 젖어도 마을로 향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워 섬과 마을 사이에 돌을 놓아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대나무숲 샛바람길 지나 벽화까지
성벽이 끝나고 마을에 가까워질 즈음 대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는 숲이 나타난다. 방풍림으로 조성한 것이 지금은 샛바람길이라는 예쁜 이름의 산책로로 활용되고 있다. 바닷바람에 잎이 바슬거리며 조잘댄다. 여름에도 이곳만은 서늘해 귀신이 나온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있단다. 이곳에 관해 주민들이 남긴 ‘보이소’라는 제목의 안내 문구가 인상적이다.
샛바람길
"샛바람 소릿길은 뎅박동에서 언덕바꿈으로 가는 시릿대 오솔길을 말하네요. 샛바람을 피하기 위해 심은, 머라캐야 하노… 일종의 방풍림이었네요. 옛날에 겁이 억수로 많은 아~들은 여 있는 시릿대 밭에 거시기해서 들가지도 못했는데 여름날 땡볕에도 서늘한데다 그만치 어두컴컴해서, 입담 좋은 동네어른들이 여름밤 돗자리에 누워 야아기해 주던 언덕바꿈 뒤 애기장 전설거치 샛바람에 한 매친 아이귀신들이 울어대는 거 멘커로 등골이 오싹해지가꼬 엄청시리 겁났네요. 인자는 다 알아삐갖고 겁은 좀 덜나는데, 그래도 혼자가모 쪼깬 그시기하네요. 우짜든가 둘이 드가서 댕기보이소"
대나무숲을 지나면 마을 속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여기는 벽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는데, 동심을 자극하는 귀여운 벽화부터 깃털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그린 날개 벽화까지 다양한 콘셉트의 작품들이 높은 밀도로 마을을 채웠다.
마을 벽화
작은 어촌을 둘러 걸었을 뿐인데, 남해가 품은 따뜻함을 느끼고 산을 타며 바닷바람을 상쾌하게 마셨다. 게다가 마을에 얽힌 전설과 왜란의 역사를 둘러 대나무 터널을 지나 마을의 벽화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거제도의 보물이 따로 없구나 싶다.
갤러리
여행정보
<가는 길>
대전통영간고속도로 통영IC, 거제방면으로 14.9㎞ → 사곡삼거리, 거제면사무소(남부)방면으로 19.5㎞ → 망치삼거리, 구조라해수욕장방면으로 1.4㎞ → 구조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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