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충남 아산 현충사

智美 아줌마 2012. 4. 28. 01:54

충남 아산 현충사

 

 

순자도 아닌 영자도 아닌 명자꽃, 현충사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꽃

 

수수꽃다리

 

야광나무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이 전사한 지 100년 뒤인 숙종 32년(1706년)에 세워진 충무공의 사당으로 현충사란 이름도 숙종이 친히 내린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향불을 피워 올리지 못하다가 1932년 전 국민의 성금을 모아 현충사를 보수하고 영정을 다시 모셨다.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사당의 규모가 확장되어 국민의 성지로 가꾸어졌다.

현충사 부근에는 이순신 장군의 외가가 있는데 어린시절부터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이곳에서 자랐다고 한다. 붉은색 홍살문이 성역으로 들어서는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충의문을 지나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본전으로 들어서면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함께 일생을 기록한 십경도가 있다.

 

한산도 생활(삼도통제사 시절, 경남 통영)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기념관 자연 채광문

 

충무문은 1967년 현충사 경내·외를 구분하기 위하여 만든 정문이다. 사당의 외부 경역임을 알리는 외삼문이라 할 수 있다

 

자목련은 목련과 달리 중국에서 건너 온 귀화 식물이라고 한다

 

같은 자목련이라도 색이 다르다. 품종이 개량된 것이 아닐까

 

가을도 아닌데 홍단풍이 가을을 느끼게 하고

이 사진만 보면 봄이 아닌 가을 사진이라고 하지 않을까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을 세워 길이 사표로 삼았으며 이 정려는 이충무공 집안에서 난 네분의 충신과 효자 한 분을 표창한 것이다.

300여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현충사의 연못은 일본 교토의 니노마루 정원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한다. 즉 연못이 일본식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께서 통탄해 하시지 않을까 당신의 영역에 아직도 일본 잔재가 남아있으니 말이다

 

하얀 명자꽃에 살짝 분홍빛

 

개나리 꽃은 다 지고 초록잎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아담한 예쁜 명자꽃 나무

여기 저기 자목련이 많이 눈에 띈다

옛집 옆 은행나무 2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것으로 충무공이 활을 쏘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 능선은 충무공이 말을 타던 곳으로 치마장이라 불린다

제 51회 대통령기 전국 시. 도 대항 궁동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철쭉 빛이 너무 이쁘다

 

 

이순신 장군 가족들 묘역

이순신 장군 고택이다, 2009년 7억 때문에 경매에 나왔던 비운(?)의 집, 이순신 장군께서 소년 시절부터 무과 급제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였는데 후손들의 잘못으로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까지 처했다니 가슴 아픈 일이다

은행나무 열매가 아닌데 이름이 입 안에서 뱅뱅

 

모과나무 꽃이다. 열매는 못생긴 과실로 단연 일등이지만 그래도 신께서 꽃은 여느 꽃보다 더 이쁘게 피어라 해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왕버들

현충사 홍살문은 궁전, 관아, 능, 사당 등에 들어오는 길머리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이다. 사당의 경내를 표시하며 그 경건성을 유지하기 위한 성역임을 나타낸다. 1968년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이다

본전으로 들어가는 충의문

또 다른 색의 철쭉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현충사의 본전. 1967년에 준공된 콘크리트 한옥 건물이다. 이곳에서 매년 4월 28일 이충무공탄신 기념다례행제 열린다

 

꽃이 아주 작은 영산홍

 

여름에는 저 위 난간에 등나무가 가득 덮힌다고 한다. 등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산철쭉

 

이 나무 이름이 입안에서 뱅뱅거리는데 생각이 안난다

 

구본전 : 현재 사당 근처에 있던 건물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거 하는데 이 건물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사당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국민성금으로 지은 사당이라고 한다.

당시에도 충무공 종손이 경제적으로 곤궁하여 현충사 일대의 임야와 토지가 은행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을 국민 성금으로 되찾았고 당시 모은 성금이 남아서 그 돈으로 충무공 사덩인 현충사를 재건립하였다고 한다. 구한말 대원군의 철폐령에 따라 기존 사당은 없어졌다고 한다.

주련은 기둥이나 벽에 장식으로 서화를 써 넣어 걸치는 물건 또는 글로써 구본전 의 주련은 위당 정인보 선생께서 쓰신 글이라고 한다.

후문에서부터 한바퀴 돌다보니 정문으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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