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우이령길 오봉산 석굴암

智美 아줌마 2010. 6. 2. 02:45

 

 

 

 

오른쪽 군부대 유격장이 있는 길로 올라가면 석굴암이다

 

 

군인들이 훈련하는 설치물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올라가다보이는 미륵봉과 오봉

씀바귀꽃 사이로 며느리밑씻개가 보인다

초여름에 핀 철쭉, 더운 날 더 뜨겁게 느껴진다.

토지불사공덕비석

석축공사가 한창이다

석축 위에서 바라 본 상장능선,  산행이 금지되어있다.

오봉의 서남쪽에 있는 관음봉 중턱에 자리잡은 양주 오봉산 석굴암은,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서 마치 여러 별이 모여 북극성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아 그 산세가 크고 뛰어나며, 물 또한 맑고 골이 깊어 수행하는 사람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사찰이라고 한다

 

 

 

 

 

 

 

노랑붓꽃

하늘매발톱과 함께있는 겹꽃이다. 매발톱 종류인것 같은데 . . .

요즘 많이 눈에 띄는 금낭화

붉은 찔레

삼성각, 기도할 사람만 올라가라는 안내글이 있어 차마 못 올라가보았다

경내에서 바라본 미륵봉과 오봉

 


석굴암 나한전

6·25전쟁이 끝난 지 2년쯤 되었을 195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주지 초안선사가 석굴암에 움막을 짓고 모친 조삼매심 보살님, 화주 윤일광심 보살님과 함께 석굴암 중창발원 천일기도를 드리던 중 인근마을에 사는 세명의 노파들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 찾아왔다.

당시 초안선사는 승복 한 벌을 구할 수 없어 제대할 때 입었던 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을 정도로 어려운 사중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지극정성으로 드리는 선사의 기도발원은 공덕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석굴이 너무 비좁아 서너명 밖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황씨 부인 등 기도객 세 명만이 석굴에 들어가고, 초안선사와 윤일광심 보살은 석굴밖에 자리를 깔고 앉아 염불과 기도를 올렸다.

사건은 '생마지'가 발단이 됐다. 본래 독성님은 생식(生食)을 하시기 때문에 그날도 석굴암에는 생공양미세 불기가 올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이치를 알 턱이 없는 노파들은 불공 중간에 자기들끼리 "절 사람들이 게을러 밥을 지어 마지를 올리지 않는다"고 험담을 했다.

그런데 불공이 끝나갈 무렵 고개를 들어 나한상을 쳐다본 세 노파는 그 자리에서 놀라 맨발로 석굴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초안 선사와 윤보살이 노파들의 손에 이끌리어 황급히 석굴에 들어가 보니 생쌀 불기마다 움푹 패인 자국이 있고, 없어진 생쌀은 독성님의 입과 가슴, 그리고 무릎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날 이후 석굴암 인근 마을은 물론 경향 각지에 '석굴암 부처님이 생쌀을 드신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고, 전국의 기도객이 공양미를 들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안선사와 윤보살이 화주탁발을 나가면 사발 가득히 공양미를 시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국 독성님의 이 같은 이적과 영험에 힘입어 중창불사 발원 천일기도가 끝날 즈음에는 비록 임시 가건물이었지만 요사채와 삼성각의 낙성을 볼 수 있었고, 이 때 석굴암과 인연을 맺은 선남 선녀들은 이후 계속된 40여 년 중창불사를 원만성취하는데 있어 누구보다 앞장서 시주공덕을 쌓아 나갔다.

그 때 이후로 오봉산 석굴암 나한전은 생미를 올리는 도량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대웅전

 

불두화

 

 

군인들의 국호 쌍용사

감자꽃

비닐 하우스 농장에 토마토가 주렁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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