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사당의 단심문(임향한 일편단심)
현판 열녀춘향사와 영정
백양꽃
춘향관
조선 숙종 즉위 초 전라도 남원에 삼남의 명기 월매라는 퇴기가 있었는데 성참판과 살았으나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어 지리산 산신께 지성으로 빌어 딸을 얻었으니 그 이름이 춘향이라.
어려서 부터 어질고 착하며 글 읽기에 힘써 예모정절을 일삼으니 그녀의 효행이 남원골에 가득하였다.
봄볕이 무르익은 어느 날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은 방자를 데리고 호남의 경승지 광한루에 올라 춘홍과 시심에 젖었는데 때마침 춘향이는 몸종 향단이와 함께 오작교 건너 숲에서 그네를 뛰고 있었다.
멀리 숲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춘향의 모습에 넋을 잃은 이몽룡이 방자에게 묻는다.
"여봐라 저 건너 화류 중에 오락가락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고을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라 하옵니다."
"그럼 급히 가서 불러 오너라."
이리하여 광한루에서 춘향을 만나 이도령은 첫 눈에 서로 마음이 통하여 그날 밤 글 공부를 뒤로하고 방자를 앞세워 월매집으로 춘향을 찾아간다.
초롱에 불을 밝혀 춘향집에 당도한 이몽룡은 월매를 만나 춘향이와 백년가약을 맺고자 청하여 허락을 얻은 후, 이때 부터 이몽룡은 춘향을 찾아 사랑을 속삭이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얼마 후 이부사가 동부승지를 제수 받아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고 이몽룡 또한 부친과 함께 상경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에 이도령이 춘향을 찾아와 뒷날을 기약하자 오리정까지 나가 눈물로 배웅을 하고 돌아와 재회의 날을 고대하며 시름 속에 살아간다
이때 신관 사또로 부임한 변학도는 정사는 뒤로 한 채 기생점고 부터 벌이는데 남원의 기생들을 모두 살펴보아도 눈에 드는 기생이 없자 사령을 불러 남원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있던 춘향을 대령토록한다.
호색가 변학도는 춘향을 보자 그 미모에 반하여 수청을 강요하며 갖은 유혹을 다하나 춘향은 한양으로 올라 간 이도령을 생각하며 목숨을 걸고 거역한다.
이에 크게 노한 변사또는 춘향에게 모진 매질을 하여 옥방에 가두고 다가오는 자신의 생일 잔칫날 처형키로 한다.
한편 한양으로 올라 간 이몽룡은 글 공부에 열중하여 장원급제를 하고 암행어사가 되어 전라도로 내려 오게 된다.
걸인행각의 이 어사는 남원에 당도하여 춘향집을 찾아간다. 때마침 정화수를 떠놓고 사위가 과거급제 하기를 축원하던 춘향모는 어사또의 차림새에 크게 실망한다.
그러나 춘향이는 옥중으로 찾아 온 걸인행색의 이도령을 반기며 나 죽은 후에라도 '나 본듯이 섬겨줄 것"과 "선산에 묻어줄 것"을 어머니와 서방님께 눈물로 유언을 한다.
변사또의 생일날 남원부의 인근 고을 수령이 모두 다 모여 성대한 잔치가 벌어진다.
걸인행색으로 말석에 자리한 이 어사는
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 금잔의 맛좋은 술은 천백성의 피요
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니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낙시민루락) :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이 눈물 쏟고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더라.
라는 시를 지어놓고 그 곳을 물러나와 어사출두를 하니 잔치 마당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된다.
이로써 변사또는 봉고파직을 당하고 춘향과 이도령은 감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어사또는 공사를 닦은 후에 춘향모녀와 함께 상경하여 대사성에 오르고 춘향은 정렬부인에 봉해져 백년해로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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