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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남녘땅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하늘을 배회하다 잠시 담양에 내려앉는다. 그것은 소슬하고 또 정갈하게 대나무 숲 사이를 지나 꽃과 나무와 새 그리고 담양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누각과 정자들에 순수하고 무결한 흔적을 남긴다. 담양에는 비가 내린다고 했다. 날짜를 늦추어볼 생각도 했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행이란 있는 그대로 보며 느끼는 법이기에 주저하지 않고 광주행 표를 끊었다.
어두웠던 하늘은 마침 정읍을 지나면서 맑아졌다. 사람들은 담양을 대나무의 고장으로 인식하는 편이다. 소쇄원에서 죽녹원 그리고 대나무 박물관에서 대나무 축제로 이어지는 대나무의 향연은 그런 생각이 미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담양의 숨은 그림은 가장 한국적인 선들이 만나는 곳이자 가사를 읊었던 풍류의 뜰, 정원과 누각에 있다. 담양은 예전부터 ‘담양 갈 놈’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조정에서 많은 신하들을 유배 보낸 곳이었다. 때문에 한양에서 내려온 관리들은 이 물 맑고 볕 좋은 담양에서 수많은 정자와 누각을 지어 살며 때로는 임금을 그리워하고 또 때로는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유유자적했다. 시세의 풍류와 시절의 한탄이 만난 곳, 그리고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이 그리워질 때. 그때, 담양.
자신을 바라보다 소쇄원
소쇄원은 별서정원이다. 별서정원이라 함은 시류의 벼슬이나 당파 싸움에 휩쓸리지 않고 자연에 귀의해 벗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 위해 만든 정원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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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와 배롱나무는 그 격에 품을 얹어준다. 광풍각 끝에 앉아 이 엄정하되 은밀한 소쇄원에 찾아올 자연들을 생각해 본다. 동백이 처절하게 붉어지는 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여름 소나기의 낙수, 눈이 오는 날 댓 잎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 그리고 가을의 늦은 햇빛도 잠시 내려 앉았겠거니. 양산보는 죽기 전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
“소쇄원을 남에게 팔지 말며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말라“
한국 문학의 산실 가사문학관
가사문학관은 소쇄원에서 나와 국도를 따라 담양 방향으로 20여 분을 걷다보면 나온다. 맑은 하늘과 어디에선가 미약하게나마 대나무 향이 묻어나는 바람, 걷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길에는 붉게 물든 연산홍이 피어 남도의 녹음에 시각적인 색채를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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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가사인 사미인곡에서 정철은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가 되리라고 노래했다. 님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내님 좇으려 하노라던 송강. 한양 태생이긴 하지만 담양은 분명, 송강의 고장이 돼야 할 것이다.
그림자가 쉬다 식영정
가사문학관 옆 광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등성이. 그곳에 오르면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의 식영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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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멋지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저 흙을 덮고 조용히 식영정과 살고 있는 그 거대한 묵묵함에 여타의 수사가 필요하지 않은 까닭이다. 언덕에서 내려오면 뒤편에 서하당과 장서각이 있으며 행정구역상 광주 지역으로 들어가지만 길 건너에는 환벽당과 취가정이 있다.
담양, 빛을 담고 있는 못이라는 뜻의 담양. 담양이 말하는 그 빛과 못이란 곳곳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수많은 누각과 정자를 말함이 아니었을까.
“삶이, 길 없는 숲에 들어와 얼굴에 걸리는 거미줄을 떼어내며 맴도는 일 같을 때 뿌리로써 서로를 움켜잡고 꼿꼿하게 일생을 뻗어 올린 대나무의 의연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대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며, 하늘을 향해 나무 타기를 되풀이하던 소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배한봉 시인의 시 ‘대나무’의 한 구절>
모든 대나무의 휴식 죽녹원
대나무의, 대나무에 의한 그리고 대나무를 위한 죽녹원. 담양 북쪽 성인산 일대 약 16만㎡의 부지에 조성된 죽녹원은 부인할 수 없는 담양의 대표 방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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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방제림
관방제림은 일부러 이른 시간에 찾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오후 나절은 호젓함과는 정반대의 시간이라서 도심 속에서 나무 사이를 걷기에는 확실히 적합하지 않았다. 마침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지만 도착하고 나니 운무는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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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방제림은 영산강 상류 지역인 담양천에 걸쳐 있는 2km 남짓한 제방 숲으로 천연기념물 제 366호다.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 관에서 조성했기에 제방을 따라 줄지어선 나무숲과 함께 관방제림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나무들은 느티나무와 푸조나무, 팽나무와 음나무 등 낙엽성 활엽수 170여 그루로 이곳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소품들이다. 관방제림의 첫 인상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제방 위에 난 길을 걷는다는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직선이었던 길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기기묘묘한 자태의 나무들이 시야에 머물면서 이 길이 어쩌면 죽녹원보다 더 이른바 길에 더 충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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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자연과 함께 하지 못할 때 그 길은 그저 땅에 머문다. 길은 나무와 여기저기 비죽이 솟아난 작은 돌 그리고 휘파람새가 지저귀며 바탕을 깔아주며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산책, 그 홀로 걸음의 절정은 이곳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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