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민속박물관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연산군묘에 들릴 생각에 버스를 타고 넘어오나가
이런 ~ 한 정거장 전에 내리고 말았다.
이 고개를 깃점으로 강북구와 도봉구로 나뉘어지는데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지만 숲내음을 맡으며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한적한 숲길로 나있는 도로
숲을 둘러보며 걷는데 나무가 꼬불꼬불 꼬인 것이 . . . 한 컷!!
연산군묘로 올라가는 계단
올라가니 바로 문인석상이 맞중나온 듯 서있다
연산군묘에는 5구의 묘가 있는데
연산군 사위 구문경묘와 연산군 딸의 묘(아래)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묘(가운데)
연산군묘와 부인 거창신씨묘(위)
조선왕조제10대 임금이였던 연산군은(1476~1537) 성종의 큰아들로 태어나 19세에 임금이 되었다.
젊은 임금으로 붓글씨도 잘쓰고 시를 잘 지어 이름을 날렸으나 두번의 사화를 일으켜 조정을 어지럽히자 신하들이 왕위를 박탈하여 연산군으로 강등 강화도로 추방시켰다.강화도 교동에서 37세사망하여, 그곳에 매장되었다가, 이후 양주군 해동면 원당리로 이전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도봉구 방학동이다.
연산군묘를 지키는 문인석상
연산군묘 아래 있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서울시 지정 보호수 제1호인 ‘방학동 은행나무’엔 나라에 큰일이 나기 전 이를 예고라도 하듯 나무에 원인모를 불이 난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자기 스스로 불타면서 나라의 위태로움을 미리 알려주는 ‘애국 수목’으로 불리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1년 전인 1978년에도 나무에 화재가 발생, 소방차가 출동해 불을 껐다
나무가 자라는 데 지장을 줄까 봐 주변에 아파트를 지을 때 건물 배치를바꿨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870여 년. 둘레 10.7m에 높이는 25m에 달한다. 한때 고사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지만 생육에 지장을 주던 주변의 빌라와 아파트 담장을 철거한 후 건강을 회복하고 있단다.
왼쪽에 나무를 돌고 계신 할머니 모습을 보면 나무 들레가 얼마나 큰지 어림 짐작이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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