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이야기가 있는 계단을 오르다

智美 아줌마 2015. 4. 9. 01:32

그저 귀찮고 힘들게만 여겨졌던 '계단'에도 멋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랑하는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계단 나들이를 떠나보자. 혼자라도 좋다. 폭이 좁아 한 줄로 올라야만 하는 계단도 있으니!

대구 3·1 만세운동길 90계단

1910년 무렵 미국인 선교사들이 블레어 선교사를 위해 지은 동산선교사주택.

독립운동의 역사가 남아 있는 90계단.


대구의 3·1운동일이었던 1919년 3월 8일, 이 지역 학생들은 일본의 감시를 피해 서문시장으로 가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다. 그 지름길이 바로 '3·1 만세운동길'로, 시작점엔 90개의 계단이 있다. 3·1운동 당시 이곳은 소나무 숲이 울창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학생들은 일본 경찰들의 눈을 피해 집결 장소로 갈 수 있었다. 지금은 소나무 숲이 사라지고 작은 돌담과 계단만이 남아 있는데, 이 길은 '대구의 몽마르트'라고 불리며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90계단 옆 돌담에는 1900년대 초 대구의 모습과 3·1운동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90계단을 오르면서 잠시나마 그 시대를 느껴볼 수 있다. 동산선교사주택에서 출발해 3·1 만세운동길을 시작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계산성당, 이상화·서상돈 고택으로 이어지는 길은 근대 건축물, 민족운동가 고택 등을 통해 대구의 근대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행 코스다.

주소 :대구 중구 달구벌대로

보기만 해도 아찔한 삼선계단.
완주 대둔산 삼선계단

대둔산은 충남 논산, 금산과 전북 완주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자락의 풍경과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원효대사가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등산에 자신이 없다면 완주 방면 등산로에 설치된 케이블카를 이용해보자. 케이블카에서 내린 뒤 금강구름다리를 건너면 다음 관문인 삼선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이 계단은 사다리처럼 가파르고 바로 아래 낭떠러지가 있어 오르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또 폭이 0.5m밖에 되지 않아 한 줄로 올라야 한다. 옆에서 손잡아줄 사람도 없으니 짜릿함은 배가된다. 삼선계단을 오르면서 힐끗힐끗 보이는 대둔산의 풍경도 놓치지 말자.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대둔산의 정상인 마천대가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진다. 마천대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낙조대에 이르는 구간도 추천한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 광경이 일품이다.

주소: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부산 절영해안산책로 피아노계단

절영해안산책로와 바다.

알록달록 피아노계단

 

굽이굽이 걷는 재미가 있는 부산 영도의 절영해안산책로.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안을 끼고 돌 때마다 경치가 달라지는데, 산책로가 끊기는 부분에서 피아노계단을 만날 수 있다. 초록, 빨강, 노랑, 파랑 색색별로 칠해놓아 '피아노계단'이라고 불린다고. 밑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계단의 경사가 제법 높다.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차다면 뒤를 한번 돌아보자.

 

피아노계단 위에서 마주하는 바다와 볼을 스치는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절영해안산책로의 구불거리는 해안선을 한눈에 볼 수도 있다. 계단 끝에 올라서면 두 가지 갈림길이 나온다. 흰여울길로 통하는 길과 다시 절영해안산책로로 향하는 길. 바다를 충분히 즐겼다면 흰여울길을 걷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에는 해안 절벽가에 형성된 작은 마을인 흰여울 문화마을이 있다.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등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진 이곳은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닮았다. 한적한 작은 마을의 골목골목을 다니다 보면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멋이 느껴진다.
주소 부산 영도구 절영로

부산 중앙동 40계단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40계단.

뻥튀기 아저씨 동상. 1950년대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한 동상. 계단 중앙에 있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 동상.
6·25 때 피난민들은 40계단 근처에서 생활의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판자촌이 밀집해 있던 이곳은 삶의 보금자리였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였으며,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이 상봉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40개의 계단 하나하나에는 피난민들의 애환과 슬픔이 서려 있다. 계단 중앙에 있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 동상은 힘든 생활 속에도 낭만을 간직했던 거리의 악사를 표현했다.

 

 40계단 일대는 '40계단 문화관광 테마 거리'로 조성됐다. 거리를 걷다 보면 1950, 60년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거리 곳곳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동상이 설치돼 있다.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펑!' 소리와 함께 뽀얀 연기와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뻥튀기 기계와 아저씨가 인상적이다. 게다가 거리에서 50년대 경음악까지 흘러나오니, 과거로 여행을 떠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주소:부산 중구 동광길 27

인천 차이나타운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1 청과 일본 조계지를 구분하는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2 중국 음식점과 상점들이 몰려 있는 차이나타운. 3 자유공원에서 바라본 인천항.
1883년 일본이 현 인천 중구청 일대를 중심으로 7,000평을 조계지(외국인이 자유롭게 통상 ?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로 설정하자, 다음해 청국도 일본조계지를 경계로 해 차이나타운 일대를 조계지로 설정했다.

 

한중문화관 옆길에서 자유공원으로 약 100m를 오르다 보면 중간에 돌계단이 시작되는데 이곳이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다. 길 양쪽으로 설치된 석등이 중국식과 일본식으로 구별되고, 중국 청도에서 기증한 공자상도 정중앙이 아니라 중국조계지 쪽에 배치돼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또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중국식 건물이, 오른쪽에는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계단 끝에서부터는 삼국지의 주요 장면과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놓은 삼국지 벽화거리가 시작된다. 이 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형형색색의 중국 음식점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자유공원에 올라가 산책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은 지대가 높은데다 터가 넓고 숲이 울창해 산책하기 좋다. 공원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인천 앞바다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주소인천 중구 제물포량로

통영 서피랑 뚝지먼당 99계단

99계단의 끝에서 내려다 본 모습.


계단 중간에 설치된 말뚝박기 의자.통영엔 동피랑만 있는 게 아니다. '서쪽에 있는 비탈'인 서피랑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1980년대까지 이곳은 선원들이 긴 조업을 마치고 술과 함께 회포를 풀던 집창촌이었다. 하지만 현재 서피랑 뚝지먼당 일대는 통영 시내를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인 관광지가 됐다. 서피랑 마을의 꼭대기로 가기 위해서는 99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의 각 층에는 1부터 99까지의 숫자가 그려져 있다. 숫자는 단정하거나 비뚤어지고 더러는 뒤집어진 채 그려졌다.

 

첫 계단은 숫자 99부터 시작되는데, 방문자들이 첫 계단 99부터 한 숫자씩 빼면서 힘든 인생의 무게를 하나씩 비워가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계단 난간엔 통영 명정골 출신인 박경리 선생의 시를 걸어놓아 운치를 더했다. 서피랑까지 왔다면 서포루에도 꼭 들러보자. 서포루는 조선시대에 순찰 및 경비를 위한 군영 초소로 쓰이던 곳으로 통영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 전국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니 서피랑에 갈 땐 카메라를 잊지 말자.

 

 주소 : 경남 통영시 충렬로

 

99계단 시작점.<■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안지영, 경향신문 포토뱅크 ■사진 제공 / 경남개발공사, 부산 중구·영도구청, 정재영, 한국관광공사,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