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 조지훈 ‘승무’ 중
청 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의 대표적인 시 ‘승무’에서 ‘외씨보(버)선’은 세속적 번뇌를 씻어내려는 여승의 몸짓과 함께 아름다운 시구가 되었다. 사뿐히 접어 올린 맵시 좋은 외씨버선처럼 보기 좋고 걷기 좋은 길이 바로 ‘외씨버선길’이다.
외씨버선길은 2012년 3월, 청송 둘째길인 ‘슬로시티길’이 가장 먼저 열렸고, 이후 2013년 12월까지 전체 13구간이 개통됐다. 외씨버선길은 청송 주왕산국립공원에서 시작해 영양과 봉화를 지나 영월 관풍헌에서 끝난다. 전체 구간의 거리는 240km에 달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들로 꼽히는 소위 ‘BY2C(봉화, 영양, 영월, 청송)’가 감추어둔 옛길에 숨은 역사와 전설들을 가득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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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심청(沈淸) 선생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지어준 벽절정. 바로 앞에 용전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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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전천을 옆에 두고 느릿느릿 걷는 길
오늘 걷는 외씨버선길 중 가장 먼저 생긴 ‘슬로시티길’이다. 청송은 2011년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되며 신안군 증도, 완도군 청산도, 하동군 악양면, 전주시 한옥마을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힐링여행지로 손꼽히고 있다. 외씨버선길 둘째길인 이 길은 청송의 중심을 지나는 길이지만 ‘슬로시티’란 이름처럼 강변을 따라 유유자적, 느리게 걷는 길이다.
슬로시티길의 출발점은 청송읍내의 운봉관이다. 운봉관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청송도호부의 객사다. 운봉관 바로 앞에는 외씨버선길 안내사무소인 청송객주가 있는데, 버스매표소와 건물을 같이 써 아침 일찍부터 ‘시골 할매’들이 대합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청송객주에는 슬로시티길을 안내해 줄 홍영숙(55) 해설사가 있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예비군 중대장인 남편을 따라 청송에 내려온 지 18년째라는 홍 해설사는 청송에서 유일하게 외씨버선길을 안내하는 ‘길 해설사’다.
“청송이 좀 고지대에 있어서 추워요. 슬로시티길은 주로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이라서 바람이 많이 불어요. 옷 단단히 입고 오셨죠?”
등이나 배에 핫팩을 몇 개씩이나 붙이고 왔다고 하니 송 해설사는 “그건 좀 과하네요”라면서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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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슬로시티길의 출발점인 운봉관. 3 옹기 조각을 일일이 붙여 만든 외씨버선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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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관이 있는 소헌공원은 조선 세종의 정비인 소헌왕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청송은 조선시대 왕비 4명과 정승 13명을 배출한 청송심씨 본향입니다.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도 이 중 한 사람이죠. 청송심씨들의 집성촌이 바로 송소고택이 있는 덕천마을이에요.”
홍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운봉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다. 4·9일장인 청송전통시장은 썰렁했다. 예전에는 꽤 큰 난전이었지만 지금은 여느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반듯반듯한 상설시장건물이 들어섰다. 하지만 자리가 바뀌었다고 사람마저 바뀐 것은 아니라 아직도 오일장이 서면 인근 영월, 포항, 봉화 등에서 오는 농수산물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장돌뱅이들도 으레 자리를 잡는다.
전통시장에서 다리를 건너 용전천을 건너니 수달생태공원의 강변길이 시작된다. 공원 입구에는 옹기 조각을 하나하나 붙인 외씨버선모양의 조형물과 커다란 청송합격사과 모형, 그리고 조지훈 시인의 ‘승무’를 적은 안내판이 서 있었다. 사과 모형엔 손바닥을 댈 수 있는 모양이 있어 두 손을 대고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공원의 강변길은 자전거길과 비슷한 초록색의 걷기 전용 길이다. 오른쪽으로 용전천이 보이지만 겨울이라 물이 말라 썰렁했다. 시원했으면 좋았을 강바람은 귀를 아프게 할 만큼 매우 차가웠다.
“정말 수달이 살아요?”
기자의 질문에 홍 해설사는 “수달은 청송군을 상징하는 군동물로 1급수의 청정지역에서만 산다고 알려져 있다”며 “주왕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흐르는 용전천은 매우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지만 청송읍 부근은 임하호에 이르기 전 하류에 속해 실제 수달을 만나기는 조금 어렵고 요즘에는 상류인 주왕산이나 주산지 쪽으로 가야 볼 수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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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소나무가 한적하게 자리한 벽절정 앞마당. 2 두 손을 대고 소원을 비는 합격사과 모형. 사과의 고장 청송다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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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칸 만석꾼의 집
강변길에서 바로 위의 산길 입구로 올라오니 벽절정(碧節亭)이 나왔다. 벽절정은 임진왜란 때 도산전투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심청(沈淸) 선생의 절개를 추앙하기 위해 나라에서 지어준 것이다. 벽절정에서는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데, 한여름에 강바람을 맞으며 툇마루에 앉아 있는 맛이 그만이라고 했다.
벽절정 뒤편으로 가 작은 산을 가파르게 넘어 송소고택(松韶古宅)에 닿았다. ‘1박2일’이라는 인기프로그램에 이 고택이 방영되면서 이곳은 청송을 대표하는 유명 여행지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이 송소고택이 있는 마을은 ‘덕천참솟을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마음을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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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벽절정 앞에는 안내판이 있다. 벽절정에서는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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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은 역시 송소고택이다. 조선시대 만석꾼인 송소 심호택(沈琥澤)이 1880년 즈음, 호박골(청송군 파천면 지경리)에서 덕천리로 이주하면서 지었다. 심호택은 조선 영조 때의 만석꾼이었던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이다.
송소고택은 약 13년에 걸쳐 지어졌다. 경복궁을 중건했던 대목장이, 그것도 궁궐 건축에 쓰이는 적송(赤松)을 재료로 해 지었다.
“흔히 99칸이라고 하면 방 개수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1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세는 단위랍니다. 99칸집은 양반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집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서 99칸 집이라 하면 강릉 선교장과 보은 선병국가옥과 함께 송소고택을 ‘조선의 3대 99칸 집’으로 꼽는다. 청송심씨는 1960년대까지 9대에 걸쳐 만석꾼 소리를 들었다. 그 부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1940년 대 이전까지만 해도 “청송에서 대구까지 가려면 심부자 땅을 밟지 않고는 못 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영남 땅에선 경주 최부자와 더불어 부의 상징이었다.
한옥이 옹기종기 들어 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송소고택을 지키는 삽살개인 껌껌이와 귀남이는 인적 드문 겨울에 집을 찾은 손님들이 반가운 듯 꼬리를 살랑대며 주위를 맴돌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나무를 때는 소리가 정겨웠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구수했다. 감나무에는 빨간 홍시가 아직도 주렁주렁 매달린 채 그대로 얼고 있었다. 마을에서 나가는 길에 가로수로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철엔 볼 만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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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송소고택에 이르기 전 ‘짧지만 굵은’ 낮은 고개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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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나와 이제는 왼편에 강을 두고 걷는다. 약 2.5km를 걸어 중평마을에 닿는다. 이 마을에도 고택들이 많다. 무신이자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인 평산신씨 판사공파들의 집이다. 덕촌마을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중평마을에는 경북도민속자료 제89호인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과 경북민속자료 제101호인 서벽고택, 그리고 사남고택이 있다.
마을 입구엔 보기 좋은 솔밭이 조성되어 있다. 중평솔밭이다. 3,000여 평의 대지에 수령 200년이 넘는 소나무 80여 그루가 위용을 뽐내며 숲을 이루고 있다.
“참 멋지지요? 얼마 전까지 캠핑도 할 수 있었어요. 청송캠핑축제를 열기도 했고요. 그런데 캠핑장을 시작한 이후로 소나무가 병이 걸리고 약해져서 이제는 캠핑을 금지시켰어요. 소나무마다 구멍이 뚫려 있죠? 영양주사를 놓은 자리예요.”
솔밭에서 간단하게 도시락을 먹었다. 거리상으로 치면 이 솔밭이 딱 구간의 절반이다. 어렸을 적 ‘밤숲’이라 불리던 솔숲으로 소풍 가서 도시락을 까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감개가 무량했다.
솔밭에서 논과 밭이 펼쳐진 길을 걷는다. 용전천은 이번엔 오른쪽에서 우리를 따라왔다. 이번엔 갈대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왔다. 여름철엔 물놀이를 하며 다슬기를 주웠을 강변은 겨울이 되자 지극히 서정적으로 바뀌었다.
“징검다리예요!”
홍 해설가 가리키는 강가를 바라보니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다. 사각으로 반듯하게 자른 화강암은 제멋대로 생긴 자연의 돌은 아니었지만 껑충껑충 뛰어 다리를 건너는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여름에 물이 많아지면 이 징검다리가 보일 듯 말듯 잠겨요. 그때 지나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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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잎이 나는 방향을 보고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는 신기리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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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 신기동 느티나무
징검다리를 건너 잠시 도로를 걷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제부터는 낮은 산을 오른다. 숨을 헐떡이며 고개에 닿자 소망의 탑이 보인다. 수달공원 입구의 합격사과도 그렇고 소망의 탑도 그렇고, 청송은 무심코 길을 걷는 이에게 조그마한 선물들을 선사한다.
고개를 넘으면 사과밭을 지나 천연기념물 제192호인 신기동 느티나무에 닿는다. 300년 전 안동장씨의 시조가 심었다는 이 커다란 느티나무는 여느 시골마을의 고목이 그렇듯 풍년을 점치는 신기를 가졌다고 믿었다.
“봄에 나뭇잎이 어느 쪽에서 먼저 나오느냐에 따라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고 해요.”
안내도 상의 슬로시티길의 종점은 다리 건너 송강리 한지체험장까지이나 실질적으로 둘째길은 여기서 끝난다. 이 느티나무 옆에서 셋째길인 ‘김주영객주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슬로시티길은 발걸음을 빨리할 필요도, 정해진 길만을 따라갈 필요도 없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걷고 유유자적하면 그만이다. 천천히 걷다가 배고프면 어디든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도시락을 먹고 솔솔 잠이 오면 나무에 기대어 잠깐 졸면 그만이었다. ‘슬로시티’ 청송의 외씨버선길은 그렇게 즐기는 게 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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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용전천을 건너는 징검다리. 네모반듯한 돌이지만 깡총 뛰어 건너는 재미가 쏠쏠하다. 3 솔밭을 지나 논과 밭 사이로 걷는 흙길엔 갈대가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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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청송의 고택체험
청송에서는 고택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다. 가장 알려진 곳은 덕천마을의 송소고택. 고택에 에어컨, 전등 등 약간의 현대식 장치를 해두었지만 아직도 군불을 지펴 구들장을 뜨끈하게 하는 옛 한옥이다. 고택에서는 전통혼례, 작은음악회 등의 이벤트가 수시로 열린다. 투호, 군불 지피기 등의 소소한 체험도 즐길 거리다. 숙박요금은 행랑채 5만 원(비성수기 주중·주말 2인 기준), 안사랑방(4인) 15만 원, 큰사랑채(4인) 15만 원 등이다. 송소고택뿐만 아니라 그 옆의 작은 집인 송정고택과 초전댁, 찰방공종택 등에서도 고택체험을 할 수 있다. 숙박을 하지 않고 그냥 둘러보는 것은 무료지만 숙박객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방문을 함부로 여는 것은 금물이다. 고택 내의 식당에서 가정식 백반으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 8,000원.
문의 054-874-6556, www.송소고택.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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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소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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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길 가이드
외씨버선길 둘째길인 슬로시티길은 청송의 중심을 지나가면서도 번잡하지 않고 한적하다. 게다가 두 군데의 짧은 고갯길을 제외하면 특별히 오르막이 있거나 한 것도 아니어서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한여름엔 그늘이 없어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용전천이 바로 옆에 늘 있어 언제고 발 담그며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출발점인 운봉관은 청송버스터미널과 가까워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종점인 청송한지체험관 근처에는 농어촌버스 정류소가 있어 되돌아오기에도 불편함이 없고, 콜택시를 부르더라도 1만 원 이내면 운봉관까지 되돌아올 수 있다. 문의 청송택시(054-873-2029), 청송콜택시(872-0082), 진보택시(874-4449).
■코스 운봉관 → 청송재래시장 → 수달생태탐방로 → 벽절정 → 송소고택 → 중평솔밭 → 징검다리 → 소망의돌탑 → 신기리 느티나무(제3구간 시작점) → 청송한지체험장(총 11.5km, 약 4시간 소요)
■문의 청송객주 054-872-0116, www.be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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