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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오지마을···두들-듬골

智美 아줌마 2015. 3. 13. 09:32

ㆍ장인봉 턱밑 두들마을 산꾼들도 절레절레…길손 반기는 건 달랑 2가구
ㆍ죽미산·장군봉 사이 갖힌 듬골…지친 심신 어루만져주는 ‘도시내’ 일품


경북 봉화는 겹겹이 산에 둘러싸여 있다. 사방이 산에 가로막혀 예부터 경북 3대 오지로 꼽혀 왔다. 이런 봉화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마을이 있으니, 두들마을과 듬골이다. 갈 길이 험한 이곳에 발길이 옮겨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순박한 인심, 세상과 동떨어진 한적함 때문이다. 마을을 품은 청량산(870m)과 장군봉(1120m)도 엿보고 싶은 존재다. 볼거리·먹거리가 넘쳐나는 관광지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대신 번잡한 도심을 떠나 반나절이라도 세상과 절연하고 싶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청량산 중턱 깎아지른 절벽에 터를 잡은 두들마을은 산비탈에 손바닥만한 밭뙈기를 끼고 사는 2가구가 전부. 60년 넘게 이 땅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꼭 자연을 닮았다.


두들마을은 청량산 중턱에 있다. 명호면 관창리에 우뚝 솟은 청량산은 봉화의 대표적인 절경. 낙동강 상류인 명호강이 산자락을 휘감아 돌고, 병풍 같은 기암 아래 똬리를 튼 청량사가 특히 아름답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한 12개의 봉우리와 12개의 대(臺), 8개의 굴이 저마다 자태를 뽐낸다. 산세가 수려하다보니 당대의 이름난 이들이 족적을 남긴 역사 유적지도 적지 않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리보전(琉璃寶殿·내청량사), 신라 때 창건한 외청량사(응진전), 최치원이 흔적을 남긴 고운대(孤雲臺)와 독서당(讀書堂),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와 공민왕당(恭愍王堂), 공민왕이 쌓았다는 청량산성,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오산당(吾山堂·청량정사) 등이다.

무엇보다 2008년 설치한 ‘하늘다리’가 명물이다.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길이 90m, 폭 1.2m짜리 현수교다. 산악지대에 설치된 다리로는 국내에서 가장 높고(해발 800m) 가장 길다(길이 90m).

두들마을은 장인봉 턱밑 해발 500m 지점에 터를 잡고 있다. 청량폭포를 들머리로 삼아 금강굴을 거쳐 하늘다리로 이어지는 등반로를 따라 간다. 이 길은 선학정이나 입석에서 출발하는 등반로와 달리 경사가 심해 산꾼들도 기피하는 코스다.

청량폭포

소나무 사이를 비집고 내리꽂는 청량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가슴에 담고 등반로에 들어선다. 길은 콘크리트 포장길. 초입부터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가파르다. 마을까지는 30분 거리. 하지만 중간 중간 숨을 돌리지 않고는 못 오를 길이다.

고작 20여분을 걸었을 뿐인데 장딴지가 뻑뻑하고 숨이 턱에 차오른다. ‘하늘다리 1.5㎞’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 좌측 포장도로 끝 천애수골과 우측 하늘다리로 향하는 등반로에 마을이 나뉜다. 우측 하늘다리로 향한다. 역시 구불구불한 가파른 산길이다.

돌계단 끝은 철계단이다. 철계단 중간쯤에 이르자 깎아지른 절벽에 위태롭게 들어선 집 한 채가 구름에 걸려 있다. 도대체 어떤 맘으로 이리도 험한 곳에 터를 잡았을까. ‘약초 막걸리 팝니다’라고 쓰인 안내판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그 이유를 온몸으로 알 수 있다.


장인봉에 기댄 마을은 멀리 안동 땅을 굽어보고 있다. 그 풍광이 기막히다. 운무라도 깔리면 선계(仙界)가 따로 없다. 고작 2가구가 사는 마을은 산비탈에 손바닥만한 밭뙈기를 끼고 있다. 첫번째 집 마당에 들어서자 김장수 할아버지(80)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가을볕을 쬐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이 험한 곳까지 어찌 왔냐”며 길손을 반긴다.

김장수·정경례 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40년 전. 강원도 태백의 광산에서 일하다 병을 얻자 이곳으로 들어왔단다. 당시 집값은 250만원. 김 할아버지는 “당시만 해도 이곳에 터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며 “약초와 나물을 캐고 대추와 콩, 팥농사로 6남매를 키웠다”고 말했다.

두들마을 김장수 할아버지의 집


처마에 매달린 옥수수가 정겹다. 마당 한쪽에는 겨울을 날 땔감이 수북하다. 부엌에는 기름을 뒤집어쓴 가마솥이 부뚜막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김 할아버지와 이웃한 심동출(74)·권응출(71) 부부는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7살 때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온 후 67년째 살고 있다. 이들 부부 역시 대추농사로 4남매를 키웠다.

손바닥만한 마당에 고추를 말리고 있는 권응출 할머니는 “하늘다리 구경 왔냐”며 좋은 구경 많이 하라신다.

고추를 말리시는 권응출 할머니


권 할머니는 밭농사와 함께 산꾼들에게 약초막걸리를 팔고 있다. 한 사발에 2000원 하는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꿀맛이다. 다시 오던 길로 내려서 갈림길에서 좌측 천애수골로 든다.

10여분쯤 오르자 허름한 슬레이트집이 듬성듬성 눈에 띈다. 마을에는 정적이 감돈다. 가끔 개 짖는 소리만 우렁차다. 김장수 할아버지는 이곳에 한 가구만 산다고 했다. 그나마 밭일을 나갔나보다. 자연과 어우러진 소박한 풍광. 주인 없는 집 마당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계곡 아래에서 산바람이 밀려온다. 마당 한 귀퉁에 우뚝 솟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무심하다.

듬골은 춘양목 원산지인 소천면 두음리에 있다. 소천면은 봉화와 울진의 경계를 흐르는 낙동강이 느릿하게 훑고 지나간다. 듬골은 태백산 자맥에서 서쪽으로 뻗친 죽미산(907m)과 장군봉(1420m) 사이에 갇혀 있다. 골의 모양새가 사람의 갈비뼈를 닮았다고 해서 등골이라 불리는 마을은 사방이 골이다.

마을 원주민은 간데없다. 4대째 살고 있는 남중학씨(52)가 그나마 맥을 잇고 있다. 대신 안식교인들이 몰려들어 터를 잡고 산다. 두음교를 지나 골짜기로 접어든다. 마을을 가로질러 낙동강과 몸을 섞는 도시천 물소리가 세차다. 골짜기로 들어서면 인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주변은 온통 잘생긴 춘양목이다.

듬골 남중학씨의 집과 배추밭


길섶에는 당귀밭이 이어진다. 계곡 깊숙한 산굽이 너머에는 폐교된 두음분교가 있다.

50여 가구가 모여살던 15년 전만해도 원주민들은 고추와 당귀, 배추농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마을 끝은 너른 배추밭. 수확을 앞두고 배추를 손보는 일손이 분주하다.

주변 경관이 뛰어난 마을 계곡은 ‘신선들이 놀았다’고 해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도(桃)’자를 따 도시내라고도 불린다. 마을은 옛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지만 도심을 벗어나 잠시나마 복잡한 심신을 달랠 만하다.

어느덧 땅거미가 진다. 석양에 몸을 맡긴 춘양목이 유난히 붉게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