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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꼭 가봐야 할 신라 왕릉 3곳

智美 아줌마 2014. 8. 25. 10:40

경주에서 꼭 가봐야 할 신라 왕릉 3곳 한국 관광공사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이야기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 왕릉을 거닐다

천년고도 경주에는 도시와 잘 어우러진 왕릉이 제법 많다. 황남대총과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 수백 년 된 나무가 버티고 있는 봉황대, 소나무 숲으로 아름다운 삼릉과 선덕여왕릉 등 천 년을 이어온 고대 도시다운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일주일로도 다 둘러보기 어려운 경주에서 모든 왕릉을 찾아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별한 곳임에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주에서 꼭 가봐야 할 독특한 왕릉 세 곳을 만나본다.

 

정강왕릉으로 향하는 소나무 숲길.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정강왕릉과 헌강왕릉

사진작가 배병우의 선덕여왕릉 소나무 숲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곳에 가고 싶어 한다.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의 고도 경주에는 어딜 가나 신라의 왕들이 잠들어 있는 왕릉이 많다. 그리고 왕릉에는 어김없이 소나무가 있다. 소나무 숲을 따라 왕릉으로 가는 길은 신라의 역사와 왕의 업적을 따지기 이전에 감동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먼저다.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경주의 왕릉 가운데 선덕여왕릉과 삼릉을 빼놓을 수 없지만, 정강왕릉과 헌강왕릉도 소나무 숲이 제법 아름답다. 헌강왕(憲康王, ?~886)과 정강왕(定康王, ?~887)은 통일신라 말기 국운이 기울어가는 시기의 왕들이라 신라 왕 가운데 다소 존재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정강왕릉과 헌강왕릉은 경주 남산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통일전과 가까울 뿐 아니라 두 왕릉이 나란히 붙어 있어서 함께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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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강왕릉 초입의 소나무 숲길. 신라 왕릉은 어딜 가나 소나무 숲길이 먼저 반긴다.

헌강왕릉의 전경. 크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수수하다.

 

헌강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유명한 경문왕(景文王, ?~875)의 아들이다. 헌강왕 이래로 정강왕, 진성왕, 효공왕까지 모두 4명이 경문왕의 아들, 딸이라는 것도 이채롭다. 적어도 헌강왕 대까지는 삼국통일 이후 융성했던 신라의 국운이 느껴진다. 어느 날 헌강왕이 신하들과 함께 월상루에 올라 내려다보니 즐비한 민가에서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헌강왕이 시중 민공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로 백성들이 짚이 아닌 기와로 지붕을 이고, 나무가 아닌 숯으로 밥을 짓는다고 하는데 과연 맞는 말인가?” 이에 시중 민공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헌강왕이 재위 11년 만에 승하하자 정강왕이 즉위했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손아래 동생이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치세를 이어갈 틈도 없이 재위 1년 만에 여동생인 진성여왕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세상을 떠났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도로에서 소나무 숲을 따라 들어가면 금방 만날 수 있다. 소나무들이 굵지는 않지만 빽빽하게 들어서서 울창한 느낌이 든다. 구불구불 펼쳐지는 소나무의 향연이 제법 입체적이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대릉원이나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처럼 크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수수하다.

 

헌강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4단으로 쌓은 돌. 신라 왕릉 가운데서는 좀 특별한 경우다.

 

헌강왕릉은 원형 봉토분으로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무덤에 돌아가면서 4단으로 돌을 쌓았다. 정강왕릉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신라 왕릉 가운데 좀 특별한 경우라고 한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남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3~4시쯤 방문하는 것이 좋다.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소나무 숲에 퍼지며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헌강왕릉은 사적 제187호, 정강왕릉은 사적 제1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왕릉다운 왕릉을 만나다, 성덕왕릉

거대한 대릉원의 황남대총, 고목이 자라는 노동동 고분군의 봉황대, 서역인상이 서 있는 괘릉 등 신라 왕릉은 저마다 특별한 모습으로 답사객들을 맞이한다. 많은 왕릉이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총’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전(傳)민애왕릉처럼 확실하지 않지만 구전에 따라 ‘전’ 자가 붙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가장 확실하고 가장 신라다운 왕릉을 만날 수 있으니 바로 성덕왕릉이다. 성덕왕(聖德王, ?~737)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일명 ‘에밀레종’의 주인이다. 경덕왕은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이 종을 만들었다. 성덕왕은 삼국 통일의 주역인 문무왕과 신문왕에 이어 효소왕 다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삼국 통일 이후 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재위 기간이 무려 36년에 이른다.

 

성덕왕릉 전경.

 

성덕왕릉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자리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다. 불국사로 가는 7번 국도변 한국광고영상박물관에서 기찻길을 건너 숲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찾아가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가보면 경주 여행에서 뜻 깊은 보물을 하나 발견하는 셈이니 그 수고가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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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석물과 목이 달아난 십이지신상.

성덕왕릉을 둘러싼 네 방향에는 사자상이 세워져 있다.

 

성덕왕릉은 통일신라시대 왕릉으로는 형태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왕릉이다. 지름 46m에 이르는 대형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높이 90cm 정도 되는 넓은 돌을 두르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렸다. 또 넓은 돌이 쓰러지지 않도록 무덤 바깥쪽에는 삼각형의 돌을 받쳐놓았다. 특이한 것은 무덤을 돌아가며 십이지신상을 세워놓은 것. 모두 무덤 바깥쪽에 입상으로 배치했는데 이런 형태는 신라 왕릉 가운데 유일하다. 하지만 머리는 모두 사라지고 갑옷을 입은 몸통만 남아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왕릉 주변으로 괘릉처럼 네 마리 사자가 사방을 지키고, 홀로 남은 문인석이 쓸쓸히 서 있다. 성덕왕릉은 사적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덕왕릉 아래쪽에는 머리 잃은 거북 모양의 비석받침이 남아 있고, 성덕왕의 형이었던 효소왕의 무덤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우아한 한 그루 소나무가 지키는 진평왕릉

성덕왕릉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경주 시내 방면으로 가다 보면 신문왕릉,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을 차례로 만난다. 경주 능지탑지를 지나 소로를 따라 내려가면 보문들녘의 농로가 이어진다. 들판 머리 좌측으로 능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眞平王, ?~632)의 무덤이다. 진흥왕과 진평왕 때만큼 신라 역사에서 역동적인 시대가 또 있었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도 나왔듯, 진평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 경국지색이었던 미실, 화랑으로 잘 알려진 사다함과 문노, 삼국 통일의 주역인 무열왕과 김유신 등이 신라의 전성기와 삼국 통일로 달려가던 시대였다.

 

진평왕릉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진평왕릉은 커다란 원형 봉분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신라 왕실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지만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이 든다. 그리 크지 않은 소나무 한 그루가 시립한 시종처럼 왕릉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어 풍경에 화룡점정을 찍는 듯하다. 진평왕릉은 보문들녘 건너편에 있는 낭산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낭산에 잠들어 있는 딸 선덕여왕을 바라보는 듯 애처롭다. 진평왕릉은 사적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문들녁은 원래 보문사가 있던 터다. 들녘에 보문사 당간지주와 석조, 연화문이 새겨진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보문마을에는 설총의 묘로 전해지는 무덤이 있고, 국보 제37호로 지정된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도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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