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나보다 더 중증이야

智美 아줌마 2012. 3. 9. 23:53
나이 듦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몸짓이라고 할까
연신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깜박 증세는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어찌해 볼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

어제 선자령 산행을 가면서 웃어야 되는 것인지 울어야 되는 것인지
하여튼 우리는 웃었다.

새벽 5시 15분에 출발하면서 옥영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출발했다."
"지금 옷입어."
답장을 받고 쌍문역에 도착해 보니까
와 ~ 첫 전철을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배낭 메고 가는 나를 보고
행여 힐책이나 하지 않으려나 내심 조심스러워 도둑이 제발 저리듯 혼잣말로
"나도 불과 3,4년까지 밤낮없이 일했던 사람이야."
누가 뭐라나? ㅎㅎㅎ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을 하면서 옥영이에게 전화를 하니
얼레?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어디쯤이야?" 문자를 넣어도 답장이 없고 또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폰 확인하면 전화하든 답장이 오겠지 하고 가는데
2호선도 첫차이다보니 보통 시간대보다 무지 빨리 달린다.

보통 시간대에는 20분 가까이 걸리던 것 같았는데
새벽 첫차는 11분에 주파해서 강변역에 도착을 하였다.
그런데 옥영이는 전화도 없고
혹 잠 많은 옥영이, 전철 안에서 졸다가 지나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시 전화를 연속으로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뭐여? 사람 속타게 . . .
아직 버스 시간이 여유있긴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으니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기다리는 중에 곧 도착한다고 전화가 왔다.
그 넘의 스마트폰으로 바꾸더니
전화 오는줄도 모르고 며칠을 받을줄도 모르고 헤매더니 전화 온줄도 몰랐단다.
내가 미챠부러~

그런데 문제는 옥영이의 못말리는 건망증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옥영이가 출발하면서 현관 문을 잠그고 버스 정거장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보니 어깨가 허전해서 보니까
이런 ~ 어깨에 메고 있어야 되는 배낭이 없더란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지
산에 간다는 사람이 배낭은 어쩌고 손엔 모자만 달랑, 주머니엔 카드만 달랑 . . .
허겁지겁 버스에서 내려 다시 집으로  가니 현관 앞에 얌전하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배낭
혼자 어이가 없어 웃으며 배낭을 메고 다시 택시를 타고 오다보니
배낭을 맨다고 모자를 옆에 놓고는 이제는 모자를 또 두고 왔더란다.

다행히 워머가 있어 큰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이른 아침이여서인지 선자령 입구에 도착하니 찬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어댄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설경이 펼쳐진 선자령 가는길
하얗게 쌓인 눈이 햇살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나야 안경이 변색 랜즈다보니 실내나 야외나 신경 쓰지 않고 색이 조절이 되니 괜찮은데
옥영이는 눈이 부시다고 계속 눈물이 줄줄 . . .
지난번 함백산 산행할 때도 그렇다고해서 다음에는 꼭 선그라스를 가지고 오라했건만
역시나 선그라스도 가져온다는게 그만 깜박했단다.

그려, 뭐는 깜박하지 않고 챙겨 오겠냐? 말을 말아야지 내가 . . .
게다가 선자령 정상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마죽을 가져와놓고는 숟가락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어떻게 하냐고 한다.
어떻하긴 그냥 마시든 해야지 하고는
"아이고 ~ 안가져온 것 빼고 가져온건 뭐냐? 챙겨온 것을 말해봐라, 그게 낫겠다." 고 웃었다.

나도 점점 깜박깜박해서 맨날 까마귀 고기는 왜 자꾸 먹냐고 투덜거리는데
옥영이는 나보다 더 중증이다.
지난번에는 고객에게 택배를 보내면서 핸드폰도 같이 담아 보내버려
며칠 동안 연락이 안돼 걱정하게 하더니
나중에 나도 잊어버리는 것 아닌가 몰라. ㅎㅎㅎ

2012년 3월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