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파로호 산소길 100리 걷기

智美 아줌마 2010. 12. 10. 06:20

※ 수묵화같은 화천 풍경 사진에 이어 올리는 사진입니다.

파로호는 일제강점기인 1944년, 일제는 대륙침략을 지원하는 군수산업을 위해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와 용호리의 북한강 협곡을 막아 화천댐을 축조하였다. 파로호는 이 때 생긴 인공호수로, 면적은 38.9km2이다.

한국 전쟁중이던 1951년에 학도의용군, 육군 6사단, 해병 제1연대는 중국인민지원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파로호라는 이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붙인 것으로, 오랑캐를 무찌르고 사로잡은 호수라는 뜻이란다.

폰툰다리를 통통 건너서 화력발전소 쪽으로 올라간다.

자전거 도로 표시가 예쁘다. 나도 자전거 타고싶다.
중1 때 울 엄니가 가르켜 주시려다 포기, 애들 아빠가 가르켜주려다가 포기, 싸가지가 가르켜 주려는데 내가 포기, 재작년에 겨우 싸가지한테 패달 몇 바퀴 굴릴 정도로 배웠다. 운동 신경 무딘 겁쟁이. 그래서 하루종일 걷느라 다리가 고생했다. ㅎㅎㅎ

걷다보니 대붕교가 보이고 . . .

대붕교를 지나니까 멀리 구만교와 화천 수력발전소가 보인다.

구만교

화천수력발전소는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있는 수력발전소이다 일제하인 1939년 7월 한강유역의 전원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한강수력전기(주)가 북한강을 가로막아 총저수량 10억2천만톤의 거대한 댐공사를 기공하여 1944년 10월에 준공을 보았다.

동년 5월에는 제1호기, 10월에는 제2호기를 설치 완료하여 발전을 개시하였고, 제3호기는 수차 일부를 설치하던 중 8.15 해방을 맞이하여, 일본인들이 철수 후 발전소는 북한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리고 안타깝게 터빈·발전기·주변압기 등 주요기기는 1·2·3·4호기 모두 일본 히타치 제작소에서 제작, 공급한 것이라고 . . .

화천수력발전소는 참 사연이 많은 곳이다. 휴전 후에 남,북한 모두 폐허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화천수력 발전소가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1950년 6. 25사변이 발생하여 동년 10월에 수복과 함께 11월 8일에는 제1호기가 시운전에 들어갔으나 11월 11일에 적 치하로, 11월 20일 재탈환, 12월 25일 또 다시 적의 치하로 들어갔다가 다음해인 1951년 4월 화천 전투의 승리로 발전소가 수복되었는데 완전수복 하기까지 발전설비가 입은 피해는 실로 막대하였다.

2004년 9월 14일 문화재 제109호로 등록. 한국수력원자력㈜ 소유이며 화천수력발전소장이 관리한다

다리를 만들려던 교각인지 구만교와 꺼먹다리 사이에 있다

이제 꺼먹다리가 보인다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1945년에 건설한 다리이다. 길이 4.92m, 폭 4.8m이며 전체적인 외관이 단순하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철근콘크리트 주각 위에 형강을 깐 다음 각재를 덧댄 가구식 구조이다.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해‘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천수력발전소와 함께 당시의 산업을 엿볼 수 있는 시설물이며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근대 가구식 구조 교량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재 제110호로 등록되어 있다.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면 우뚝 서있다

 

꺼먹다리 가는 길에 있는 통일기원비

지금도 길이 예쁜데 꽃피고 단풍 들었을 때는 더 예뻤을 것 같다.

저기 정자에 잠시 앉아 쉬면서 간단한 요기도 했는데 날씨가 추워 뜨거운 국화차도 금방 식어버리고

 등꽃이 피었을 때는 참 예뻐서 저 의자에 쉬었다 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꺼먹다리에서 본 양구 방면

꺼먹다리에서 본 화천 방면

이제  구만교를 건너 화천 쪽으로 내려갈 것인데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ㅎㅎㅎ

어떤 꽃이였을까?

억새가 꽃씨을 다 털어내지 않고 남아 있다

구만교를 건너면서 바라본 화천수력발전소

살랑골? 마을 이름이 참  정겹다. 살랑살랑 . . .

내가 걸어 올라갔던 강 건너의 풍경

건너왔던 구만교

대붕교

와 ~ 길을 걷다보니 목화가 있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 밤하늘에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한던 곳,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목화밭 . . .

병아리 솜털같은 꽃씨 . . . 모르는게 많다보니 궁금한 것도 많다. ㅎㅎㅎ

강 건너를 걸을 때는 잘 볼 수가 없던 풍경이 강 건너에서 보니까 멋지고 . . .

걸어 내려오다 돌아보니 대붕교, 구만교, 화천수력발전소가 다 보인다.

이것은 갈대이다. 위에서 본 것은 억새, 많은 사람들이 혼동을 한다.

드디어 긴 폰툰다리 있는 곳에 도착했다.

건너에서 볼 때는 직선 다리같이 보였는데 산모퉁이 따라 곡선으로 되어 있다.

아, 그런데 물 가운데로 걷게 만들어 놓은 이 다리를 혼자 건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물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이무기같은 뭐가 튀어 나올까봐 건너는 내내 가슴이 콩닥콩닥 . . . 걸음아 ~ 날 살려라. 하는 마음으로 바삐 건너 가는데 뭔 다리가 그렇게 긴지 무서워 dg는줄 알았다. ㅎㅎㅎ

다리 중간에 약숫물을 받아 먹을 수 있게 산에 있는 샘터와 고무 호수로 연결해 놓았는데 겨울 이라서 그런지 물이 안 나온다.

돌아보니 많이도 왔는데 아직도 더 가야한다

산모퉁이 따라 굽이굽이 놓인 통통다리 . . .

에효 ~ 이제 다 건너왔다. 아직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ㅎㅎㅎ

 

그려, 여행은 걸어서 해야되는겨. 아고 ~ 다리 아파 . . . ㅎㅎㅎ

여러분 ~ 여행 많이 하세요. 기회는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화천은 예로부터 강을 이용한 수운이 발달해 주 교통 수단이 뗏목이였다고 한다. 소금배가 오는 날이면 물물교환을 위해 화천 사람들이 북적였으며 소금배가 강변을 오를 때면 흥겨운 창을 부르며 배를 끌어올렸다고 전한다

이제 숲길을 빠져나와 마을 길로 간다

한적한 시골길, 날이 저물기 시작하고 . .

 

작은 폰툰다리가 또 있다.

 

해가 짧은 화천이라서그런지 4시가 넘어서자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한다.

 

에구 ~ 이제  아침에 출발한 곳이 멀지 않았다. 화천 대교가 보인다.

 

위라리 마을을 지나는데 노을빛이 물들기 시작하고 . . .

조금 더 가까워진 화천 대교

위라리 탑을 찾아 마을로 들어가는데 있는 예쁜 유치원 계단

아이들은 다 집으로 가고 놀이터만 노을빛을 맞이하고 있다.

위라리 7층 석탑은 고려 제25대 충렬왕 때 화천군 하남면 계성사의 분사인 일명사와 함께 세워졌으며, 일명사탑이라고도 한다.탑의 탑신은 1, 2, 3층만이 원래의 것이고 그 위는 모두 후대에 보완한 것으로 완전하지는 못하나 한국의 석탑 가운데 보기 드문 7층석탑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드디어 출발할 때 처음 만난 폰툰다리에 도착하니 어둠이 짙어지고 . . .

저녁밥을 짓는지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길가의 산천어 등에도 불이 들어오고 파로호 100리 길 여정도 마무리를 한다.

엉덩이가 시려 자켓을 허리에 둘렀더니, 오마나 ~ 엉덩이가 산 만하네. ㅎㅎㅎ

※ 찾아가는 길
동서울터미널 → 화천 : 06시30분, 06분50분, 08:10분 . . .
화천 → 동서울터미널 : 7:30, 18:30, 19:30

'나 홀로 떠나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비구비 구곡폭포 가는 길   (0) 2010.12.23
추억으로 가는 경춘선 강촌역  (0) 2010.12.23
수묵화같은 화천 풍경   (0) 2010.12.09
남산 트레킹  (0) 2010.12.03
안개 낀 장충단 공원  (0) 2010.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