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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기 좋은 호젓한 사찰 여행,강릉 현덕사

智美 아줌마 2016. 8. 6. 14:06

절정으로 치닫는 여름, 나만의 휴가를 누리고 싶었다. 빽빽하게 채운 여행 계획표와 북적이는 피서지보다 뜨거운 머리를 식히고 마음 한 움큼 덜어낼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강릉 만월산 자락 현덕사로 떠났다. 스님이 손수 내려준 커피 향과 솔 향 가득한 산사에서 보낸 1박 2일은 온전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현종스님과의 차담 시간. 현덕사는 커피 볶는 사찰로 유명하다.

현종스님과의 차담 시간. 현덕사는 커피 볶는 사찰로 유명하다.<사진제공·현덕사>현덕사는 홀로 찾는 이가 많다.

현덕사는 홀로 찾는 이가 많다.

태백산맥이 부려놓은 여유로운 절집

강릉터미널에서 버스로 40여 분. 현덕사로 향하는 연곡천변 도로는 피서철을 실감할 수 없을 만큼 한산하다. 현덕사 표지판을 따라 30분 정도 오솔길을 오르면 하늘과 맞닿은 절집이 자태를 드러낸다. 산사를 빙 두른 숲에서 그윽한 솔 향이 피어오른다.
현덕사는 오대산 줄기인 만월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이다. 순천 송광사에서 출가한 현종스님이 1999년에 창건했다. 얼마 전 현종스님의 뒤를 이어 주지를 맡은 지정스님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절이 지닌 시간도, 규모도 단출하지만 풍채 좋은 소나무와 경내 어디서든 바라보이는 태백산맥의 풍광이 웅장하다. 봄이면 커다란 목련나무에 탐스런 꽃이 열리고, 여름에는 박덩굴이 하얀 꽃을 피워 올린다. 뒤뜰 약사여래불로 이어진 길에는 목화가 싹을 틔웠다. 9월 초면 소담한 목화꽃이, 10월이면 보송보송한 솜이 맺힌다.

아담한 현덕사 전경

아담한 현덕사 전경

툇마루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 템플스테이 숙소. 황토와 소나무로 만든 방이 쾌적하다.

 [왼쪽/오른쪽]툇마루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 / 템플스테이 숙소. 황토와 소나무로 만든 방이 쾌적하다.

무엇보다 현덕사는 하룻밤 홀로 지내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좋다. 주로 혼자 혹은 두엇이 찾는 경우가 많아 호젓하고 여유롭다. 템플스테이는 보통 수행형, 체험형, 휴식형으로 나뉘는데 현덕사 템플스테이는 휴식형에 가깝다. 프로그램 자체보다 참가자의 뜻에 더 큰 의미를 둔다. 1박 2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여느 사찰처럼 예절 교육, 아침·저녁 예불, 108배, 참선, 숲길 포행, 스님과의 차담 등으로 이뤄져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요일이나 인원수에 상관없이 상시 참여 가능하다. 프로그램에 맞춰 템플스테이 체험을 할 수 있고, 원한다면 하루 세 번 공양 시간을 제외하곤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다 갈 수 있다. 정해진 틀이 없으니 스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시간도 많다.
"템플스테이의 본질은 불교 체험만이 아닌기라. 삼시세끼 같이 먹으며 대화도 나누고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기지. 여기 달빛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별도 보고 달도 보고 그런 여유를 주고 싶었데이. 자기한테 선물 같은 시간을 줘야지. 누구의 아내, 엄마, 자식이 아니고 나한테만 집중하는 시간이 참 중요하데이."

스님과 마음을 터놓기 좋은 현덕사 고요한 산사에서 맞는 예불 시간

[왼쪽/오른쪽]스님과 마음을 터놓기 좋은 현덕사 / 고요한 산사에서 맞는 예불 시간<사진제공·현덕사>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


108배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108배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108배별빛 가득한 현덕사의 밤

별빛 가득한 현덕사의 밤

새벽 4시. 탁탁탁탁, 목탁 소리가 깊은 밤을 깨운다. 주지스님이 경내를 돌며 도량석을 하고 계셨다. 도량석은 아침 예불을 하기 전 도량을 깨끗하게 하고 천지만물을 깨우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다. 아침 예불과 아침 공양을 마친 뒤 사찰 인근의 곰바우골로 포행을 나섰다. 깜이와 보리가 앞서 길을 안내한다. 두 마리 모두 유기견센터에서 데려온 강아지로 현덕사의 마스코트다. 강아지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현종스님은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산수국, 애기똥풀, 물봉선 등 꽃 이름을 알려줬다. 산책의 종착지는 연꽃이 가득 핀 연못. "연꽃은 흙탕물에 살지만 절대 흙을 안 묻힌다. 우리도 연꽃처럼 살아야지, 안 그렇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목탁 소리로 시작되는 현덕사의 아침 덜 깬 몸과 마음을 깨우는 아침 포행

[왼쪽/오른쪽]목탁 소리로 시작되는 현덕사의 아침 / 덜 깬 몸과 마음을 깨우는 아침 포행

 

커피 한 잔에 담긴 우주만물의 이치

포행을 마치고 절 마당에 들어서니 구수한 향이 경내에 가득하다. 공양보살님이 화덕에 불을 피워 땀을 뻘뻘 흘리며 원두를 볶고 있었다. 현덕사에서 스님과의 차담 시간은 특별하다. 커피의 성지 강릉답게 참숯에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스님이 손수 커피를 내려준다. 원한다면 로스팅이나 커피 내리기 체험도 가능하다.
현덕사가 커피 볶는 사찰로 이름이 난 건 2009년. 강릉 커피 축제를 시작하던 해에 현덕사가 커피 축제장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그 전부터 현덕사를 드나드는 바리스타급 신도들이 많았다. 그 덕에 화덕을 직접 주문해 들여놓곤 스님도 커피를 볶고 내려 마시게 되었다. 차담을 나누는 방 이름도 '가배(커피의 옛말)방'이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진솔한 대화가 이어졌다. 마음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다는 말에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기 분수를 몰라서 그렇다. 자신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게 먼저인데 자꾸 넘칠라 하니까 그렇지. 이기는 법을 알면 지는 법도 배워야 하고. 지는 법을 몰라서 더 괴롭고 불안하고 그런 기라."
커피를 내리고 커다란 사발에 건네 마시는 짧은 시간, 우주만물의 이치가 모락모락 김을 올렸다.
현덕사에서는 염주 만들기, 소원팔찌 만들기 등의 체험도 진행한다. 소원팔찌는 행운을 불러온다는 오방색 실을 엮어서 만든다. 한 올 한 올마다 장수와 행복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는 게 포인트. 정성껏 만들어 선물용으로 주기 좋다. 휴대폰 알람 대신 목탁 소리에 기대 아침을 맞고, 스님이 손수 내려주는 커피를 들고 툇마루에 앉아 나른한 오후를 보낸 이틀. 스님의 한마디가 내내 뒤를 따랐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내뱉는 일, 그게 사는 거다. 우리는 순간을 산다. 항상 깨어 있는 삶을 살아라."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 가배방 정성껏 내린 커피와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 가배방

정성껏 내린 커피와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 가배방

참숯 화덕에 원두를 볶아 더욱 향긋하다. 오방색 실로 소원팔찌 만들기

 [왼쪽/오른쪽]참숯 화덕에 원두를 볶아 더욱 향긋하다. / 오방색 실로 소원팔찌 만들기

여행정보

현덕사
  •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싸리골길 170
  • 문의 : 033-661-5878(현덕사 종무소)
  • 템플스테이 참가비 : 1박2일 5만 원(1인)
주변 음식점
  • 보헤미안(본점) : 드립커피 / 강릉시 연곡면 홍질목길 55-11 / 033-662-5365
  • 대관령황태촌 : 황태구이 정식 / 강릉시 주문진읍 해안로 1621 / 033-662-4599
  • 서지초가뜰 : 못밥 / 강릉시 난곡길76번길 43-9 / 033-646-4430
숙소
  • 코지하우스 : 강릉시 연곡면 진고개로 1784 / 010-5364-3220
  • 노벰버펜션 : 강릉시 연곡면 영진4길 16-2 / 033-662-6642
  • 포이푸게스트하우스 : 강릉시 사천면 진리해변길 117 / 010-6563-2227

글, 사진 : 강민지(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