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비 내리는 태하령 옛길을 넘으며

智美 아줌마 2012. 6. 21. 23:19

 

남양까지 해안 트레킹을 하고 울릉도 둘레길이 울릉도에서 도로가 개통되지 않은 곳 저동 내수전에서 석포까지7km가 있고 이곳 남양에서 태하까지 7km가 있는데 이곳 둘레길을 가보자 했다.

태하까지 가기는 멀 것 같아서 태하령에서 구암 마을로 빠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남양에서 태하령으로 올라가다보니 길이 시멘트 포장 길만 계속 올라가게 되었다.

우째 둘레길이 이런겨? 하고 1시간 30분을 올라가니까 둘레길 입구라는 표지판이 있다.
뭐여? 이제 둘레길 시작인가? 하고 들어서니 워 ~ 매 우째 길이 이렇게 생겼냐? 풀이 우거져 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포기 하고 되돌아 나와 울릉 문화 관광부에 전화해서 한바탕 퍼부었다.

둘레길이 우째 이렇게 생겼냐고? 시멘 포장 길만 계속 올라가게 하더니 둘레 길 입구는 길을 알아 볼 수도 없고 . . .
하는 수 없이 포기를 하고 내려 가려는데 어느 농가에서 쓰다 남은 비닐 두루마리가 있지 않은가? 옥영이가 억울하니까 이 거라도 서리해가자고 해서 가위로 씨 ~ 웅 잘라 챙겨 넣고 있는데 오른쪽 위 꼭대기 도로에서 차가 내려오기에 남양까지 좀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니 흔쾌히 태워 주신다.

문제는 이 양반들과의 인연으로 개고생 했다나? 뭐래나? ㅎㅎㅎ
그 양반들이 어찌나 이 둘레길이 좋다고 자랑을 늘어 놓더니 좋은 일 한다며 우리를 다시 둘레길 입구에 데려다 주는게 아닌가?
입구만 그렇지 조금만 헤치고 들어가면 숲길이 끝내준다나 . . .

에구 ~ 그런데 그냥 남양으로 내려가든지 내 일정대로 태하령에서 구암마을로 내려갈 걸 태하까지 가는 내내 후회를 했다.
태하까지 갈 건데 왜 둘러가게 구암으로 빠지냐고 게속 태하로 가라고 . . .

남양에서 태하까지 둘레길은 둘레길이라기보다 태하령 옛길이라고 안내를 해야 옳은 듯 싶어 문화관광부에 다시 전화해서 안내 제대로 하라고 볼맨 소리를 해댔다. 울릉도 문화 관광부 울릉도 여행 내내 귀찮을 정도로 내 전화를 받아야 했다. ㅋㅋㅋ
태하까지 가는 내내 비는 추적추적 와대지 사방을 둘러 봐도 절경을 커녕 안개 속에 갇혀 시멘 포장 도로의 빗길만 걸어야 했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산으로 이루어져서인지 의외로 물이 참 많다

 입구를 걸을 때만해도 설래는 마음으로 걸었는데

바위 틈마다 섬기린초를 심어 놓아 예쁘다

 

와 ~ 검붉은 색의 접시꽃

핫핑크의 접시꽃도 있고

 

굽이굽이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섬초롱꽃, 색이 다양하다. 가는 곳마다 색이 다르게 피어 있다

울릉도에서 높은 산 위에 평평한 곳은 저렇게 밭을 일궈 놓고 명이나물, 부지깽이나물, 취나물을 심어 가꾼다

둘레길 입구 오른쪽에 보이는 길 막다른 길인지 계속 넘어 갈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 길에서 내려 온 차를 얻어 타고 내려가다 다시 이곳으로 데려다 놓는 바람에 에효 ~

문제의 둘레길 입구

길이 보이는가? ㅎㅎㅎ

수풀을 헤치고 헤치고 가다보니 훤한 길이 나온다.

울릉도에만 자란다는 선갈퀴, 잎이 삿갓나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선갈퀴는 잎이 도톰하다

가다가 보면 대나무 숲도 나온다더니 

 

섬말나리, 검은 점이 없는 것은 새섬말나리

비오는 날씨라 숲이 깊어 어둡다

이 계단에 오르면 태하령

구암마을 내려가는 길

윗길은 태하로 넘어 가는 길

 

 

이 거 다래 맞지?

그렇게 비오는 시멘트 길을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잉잉

울릉도 공설 운동장

태하에서 버스를 타면 이 도로로 도동까지 간다. 길이 가파르고 구비구비 올라가는 길이 장난 아니다

마을이 보이니 좀 살 것 같다

 

바다가 보일 것만 같다. 조금만 더 걸으면 태하마을

울릉도 심층수 공장

야호 ~ 바다가 보인다. 드디어 태하마을이다

 

성하신당은 1417년(태종 17)에 안무사였던 김인우는 울릉도 거주민의 쇄환을 위하여 병선 두 척을 이끌고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도착하였다. 묵을 곳을 정하고 섬 전체의 순찰을 마친 후, 내일이면 출항하여 귀환할 작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하고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해신이 꿈에 나타나서 일행 중 남녀 2명(동남동녀)을 이 섬에 남겨 두고 가라는 것이었다. 안무사는 이상하게 생각은 했으나 그 꿈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항을 결심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데, 예기치 않던 풍파가 돌발하여 도저히 배를 띄울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출발을 중지하고 풍랑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며칠을 보냈으나, 바람이 멎을 기세는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심해져 가기만 하였다.

수일을 기다리던 중에 안무사는 문득 며칠 전에 꾼 꿈이 생각났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행을 모아 놓고 동남동녀 2명에게 명하기를 자신이 잠을 자던 자리에 필묵을 잊고 왔으니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동남동녀가 안무사의 필묵을 찾으러 총총히 밀림 사이로 사라지자 그렇게 심했던 풍랑이 거짓말처럼 멎고 항해에 적당한 바람만 불어오는 것이었다.

안무사는 사람들을 재촉하여 급히 출항할 것을 명하니 배는 순풍을 받고 일시에 포구와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이 무렵 동남동녀는 아무리 찾아도 필묵이 보이지 않아 배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배는 벌써 수백 리 바다를 거쳐 육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안무사를 원망하면서 울부짖던 동남동녀는 공포와 추위,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다.

한편 육지로 무사히 돌아온 안무사는 그때 두고 온 동남동녀에 대한 죄의식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날 날이 없던 중에 다시 울릉도안무사의 명을 받고 섬에 오게 되었다. 섬에 도착한 안무사는 혹시나 하는 기대에 수색을 하였으나, 자신이 유숙했던 자리에는 두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채로 백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안무사는 억울하게 죽은 동남동녀가 너무 불쌍해 그들의 고혼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그곳에 조그마한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 그들의 혼백을 위로하였다.
그 후 매년 음력 2월 28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작이나 어업의 풍년도 기원하고 위험한 해상 작업의 안전도 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 건조한 선박의 진수식이 있을 때마다 태하1리 성하신당(성황당)에 제사를 지내 해상 작업의 무사 안전과 어업의 번창을 기원한다고 하였다

성하신당 내부(자료사진)

밤으로 가는 길목의 태하 바닷가

태하 등대 가는 모노레일 승강장

태하에 도착해서 황토구미 아래에 텐트를 치고 저녁밥을 지어 먹을 생각을 하고 가는데 모노레일 승강장이 있어 화장실에 가려고 올라가니까

어라? 대기실 문을 밀어보니 열리는게 아닌가?
오호라 ~ 좋을시구. 오늘 밤은 이곳에서 지내면 되겠다 하고 들어가보니까 씽크대까지 있고 실내니까 텐트 칠 필요도 없이 돗자리만 깔고 자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행여 누가 와서 내쫓을까봐 불도 못켜고 가로등 불빛을 등잔 삼아 씽크에서 밥을 하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빨래도 하고 땡잡은 기분으로 도둑 고양이같이 살금살금 말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바짝 긴장 하고 밥을 지어 먹고 편히 잠을 잤다

다음 날 새벽 6시경 차 소리가 들려 내다보니까
황토구미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벌서 출근(?)을 하는 게 아닌가
우리도 얼른 일어나 전날 저녁에 한 밥과 찌개를 데워 먹고 언제 이곳에서 밤을 보냈느냐 싶게 흔적없이 싸 ~ 악 치우고 황토구미 쪽으로 갔다.

황토구미와 해안 산책로를 1시간 반 가까이 둘러 보고 모노레일을 타고 태하등대로 올라가려고 했더니 일본으로 가는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강해 모노레일을 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올라갈 때는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올 때는 걸어 내려오려고 했더니 아.깝.다.

모노레일 매표소에 배낭을 맏기고 등대에 다녀오려고 부탁하면서 직원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여행객이 쉬아갈 수 있게 대기실을 개방 해놓는다는 것 . . .
이런이런 ~
도둑 고양이같이 쫄아서 묵지 않아도 될 것을 누가 보면 쫓아낼까봐 걱정 했더니 . . .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