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1호선 덕정역에서 하차,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버스 78번을 타고 회암사지 앞에서 내렸다.
해태(?) 얼굴이 넘 재미있게 생겼다.
회암사지 전시관을 짓다말은 것인지 . . .
소나무 숲길로 상쾌한 마음으로 걸어간다.
나무 옆구리에서 삐쭉 자란 단풍잎이 어느새 빨갛게 물이 들어있고 . . .
때늦게 핀 하얀 씀바귀꽃
옛날 회암사의 연못터가 수풀이 우거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지만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들린다.
드디어 회암사지에 도착했다.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년) 원나라를 통해 들어 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고 한다. 고려 우왕 2년(1376년) 지공의 제자 나옹이 절을 번성 시켰으며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 준 뒤에도 이 절에서 수도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보우가 불교중흥책을 펴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 명종 20년에 보우가 잡혀가면서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고 한다.
지금 양주시에서 회암사 절터를 유적 발굴 중에 있으며 절 면적은 333,233㎡(약10만평)이다. 총 8단지로 이루어진 폐사지에는 건물의 초석뿐만 아니라 회랑터,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다.
무너진 채로 그냥 있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괴불대
회암사지의당간지주
너무 멀어서 부도탑이 잘 안보여 설치해 놓은 자료 사진을 담아 왔다.
위의 회암사터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부도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보우스님이나 중창에 힘쓴 처안의 부도탑으로 추정
회암사지 전망대, 해설사들이 나와서 설명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