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산 청평사 가는 길
10여 년만에 다시 찾은 청평사, 늘 잊혀지지 않는 풍경이다. 상사뱀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과 함께 갔을 때 너무도 좋았던 곳이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다 성인이 되고 그 만큼 나는 늙어져 있다.
한쪽엔 계곡을 끼고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펼쳐지는 풍경은 걸은 만큼 또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사람들의 발길에 쌓아 놓은 소망들 다 이루어지길 바라며 더불어 나의 작은 바람도 이루어지길 . . .
너무맑은 물빛이 예뻐 여러번 찍고 또 찍어 보고 . . .
계곡으로 내려가 첨벙첨벙 걸어보고 싶다.
이 길이 너무 좋아 다시 찾고싶었는데 걸으면서도 뒤를 돌아다보게 하는 풍경들 때문이다
다시 앞을 향해 걷다가 . . .
또 뒤돌아보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달개비·닭의밑씻개라고도 하는 닭의장풀
칡꽃, 이보다 더 좋은 향기가 있을까? 향이 너무 좋아서 코를 킁킁대며 걸어갔다.
꽃며느리밥풀, 옛날 며느리가 밥을 짓다가 뜸이 들었나 보려고 밥알 몇개를 먹었는데 그것을 본 시어머니가 밥을 다먹어치운다고 며느리를 구박하고 때리고 . . .
잘해도 타박, 못해도 타박, 끝내 시집살이 1년도 안돼 죽었는데 이듬해 며느리의 무덤가에 빨간 입술 모양에 하얀 밥알 두개를 올려 놓은 것 같은 꽃이 피었다. 그 꽃이 바로 꽃며느리밥풀이다
다리를 건너면서 . . .
뉘집의 무덤들인지 예쁘기도 하다
중국 당태종의 공주를 사모하던 평민 청년이 신분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죽어 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감겨 살게 되었다.
의원들을 불러 갖가지 처방을 하여도 떨어지지 않자 신라의 영험있는 절을 순례하며 기도하다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계곡의 작은 동굴에서 노숙을 한 다음날, 인근에서 범종소리가 들려와 공주는 뱀에게 "절이 멀지 않은 듯하여 밥을 얻어오려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주실 수 있을런지요. 너무 피로하고 걷기가 힘겨워 드리는 말씀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다녀오겠습니다"
한번도 말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그날은 왠지 순순히 공주의 말을 들어주었다. 공주는 계곡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한편 상사뱀은 공주가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공주를 찾아 나서고 절에 도착하여 절문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상사뱀을 치니 뱀은 죽어 물에 떠내려 갔다.
공주가 밥을 얻어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있는 것을 보고 공주는 시원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하여 정성껏 묻어준 후 청평사에서 머무르다, 구성폭포 위에 석탑 하나를 세우고 당나라로 돌아갔다 한다.
그때부터 상사뱀이 돌아나간 문을 회전문, 공주가 노숙했던 작은 동굴을 공주굴, 그가 목욕한 웅덩이를 공주탕, 삼층석탑을 공주탑으로 불렸다.
그리고 전란으로 청평사 전체가 폐하가 되었지만 회전문만은 남아있었는데 , 어쩌면 전설과 관련이 있어 회전문을 지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 없던 나무 테크가 다리 위에 설치 되어 있는데 많이 손상이 되어 있다
계곡 건너 편에서 걸어 들어 온 길이 보인다.
이제 숲과 계곡 사이로 걸어 올라가면서 시원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며 걸어 간다.
계곡을 내려다 보니 물이 제법 많이 흐르고 . . .
작은 나이야가라 폭포를 연상케 한다. 뻥이 좀 심한가? ㅎㅎㅎ
공주와 상사뱀
거북이가 머리를 치켜 든 모양의 거북바위
쌍폭포는 구성 폭포 아래 있는 형제 폭포이다. 늘 두 줄기로 흘러 내린다.
폭포의 물소리가 아홉가지로 들린다고해서 구성 폭포라 부른다고 전해지나 원래는 아래 위 두개의 폭포 사이에 아홉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서 구송폭포라 불리던 것이 와전되어 구성폭가 되었다고 한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절 아래 구송정에는 이자현이 심은 아홉그루의 소무가 있는데 녹음이 우거져 잘 자라고 있다"라고 구송을 설명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본 구성폭포
오래된 누각이 있는데 관리가 안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청평사 진락공 이자현부도
고려시대의 학자이자 거사로 잘 알려진 이자현의 사리를 보관한 탑이다. 진락은 그의 시호이다. 부도는 화강암으로 만든 팔각원당형부도으로서 청평사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전체 높이는 1.8m이다. 부도 옆에는 부도비가 세워져 있다. 이자현은 인종 때 벼슬을 버리고 청평사에 들어가 아버지가 지은 보현원을 중건한 뒤 문수원이라 개칭하고 선학을 닦았다.
보현원과 문수원은 모두 청평사의 옛 명칭이며, 청평사라는 명칭도 이자현의 호인 청평거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청평사에는 부도 외에도 이자현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데, 사찰 입구에 그가 조성한 영지도 잘 알려진 유적이다. 청평사지는 강원도기념물 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평사 영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의 정원의 흔적이 남아있는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이다. 오봉산(779m)이 비친다는 이 연못은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고려시대 연못으로 일본 교토의 사이호사의 고산수식 정원보다 200년 앞 선 것이다.
영지에 있는 잉어들,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모여든다.
이 바위가 왜 쪼개졌을까? 바위 가운데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대단한 힘이다.
물 좋고 . . .
하늘빛도 좋고 . . .
이제 청평사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