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영주 봉황산의 부석사

智美 아줌마 2009. 10. 17. 03:00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에 있는 부석사는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일주문

 천왕문

 

부석사는 경전으로 들어가려면 높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올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에구 ~ 힘들어라

 3층석탑

 범종루

 안양루, 누 밑을 통과하여 무량수전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어 일종의 누문 역할도 하는데 전면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무량수전 쪽에서 보면 단층 전각처럼 보인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이중의 기능이 부여 되어 있어 건물 전면에는 ‘안양루’, 뒷면에는 ‘안양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양(安養)’이란 극락을 뜻하는 말로, 안양문은 극락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고, 안양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한다.


 석등(국보 17호)은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무량수전(국보 18호)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소조불상이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만드는 것인데, 이 불상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선묘각

 부석은『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날아 와 줄곧 의상을 보호하면서 이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아직도 무량수전 뒤에는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가 있다.

삼성각


몇년 전 아이들과 함께 기차 여행을 하면서 들린 부석사, 겨울에 갔었지만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는 기억에 다시 가보았다.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아직은 푸르름이 짙지만 경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빨간 사과가 환한 미소로 반긴다.

기차 여행 길에 몰래 데리고 간 짱아가 아이들 따라 졸랑졸랑 따라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월이 몇년이나 흘렀을까? 아기였던 짱아도 새끼를 낳아 어미가 되었으니 . . .
그때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온다.
기억 속에 있던 추억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준다.

그런데 고넘의 똑딱이와 폰카가 같이 속을 썩이는 바람에 사진을 제대로 찍어오지를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빗방울이 떨어지던 부석사가 새로운 추억 하나를 더 만들어 주니 이 또한 행복이 아닌가